새벽녘에 눈을 떴다.

어둠은 아직 강철 같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문틈을 비집고 곧게 들어온 거실 백열등의 적황색 빛도 힘을 쓰지 못했다.

하늘은 비를 뿌리는게 틀림없는 듯했다.

"쏴..." 하는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바닷가 파도소리를 연상시켰다.

비는 어제 하루종일 흩뿌린 터였다.

일기예보는 오늘도 비 올 확률이 높다고 못박았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뜻밖에도 비는 그쳐 있었다.

간밤을 지낸 반듯한 통나무집을 에워싼 산을 뒤덮은 나무의 잎들이 바람에 쓸려 내는 소리였다.

행위예술가가 초록물감을 막 들어 부은 듯 산허리 중간중간의 나뭇잎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유유히 계곡을 타고 오르는 물안개, 새들의 날아오르는 울음소리, 5월말 새벽의 오묘한 빛이 절묘히 어울렸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가슴 깊은 곳까지 확 뚫렸다.

무작정 깊은 숨을 쉬고 싶었다.

불현듯 "일곱난쟁이"가 찾아올 것 같아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숲속 통나무집이 너무 예뻐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가 살았던 것 같다며 재잘거리던 아이의 천진한 모습이 떠올랐다.

산음자연휴양림에서의 이틀째는 그렇게 동화처럼 밝았다.

산음자연휴양림은 북부지방산림관리청 산하의 자연휴양림중 하나.

1천년된 은행나무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해발 1천1백57m)과 봉미산(8백55m)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용문산 뒷그늘(山陰)이란 마을 이름처럼 정식 개장한지도 만 6개월이 안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게 제일 큰 매력이다.

사람들의 발길로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

1km 정도의 마지막 진입로는 비포장이고 마주오는 자동차가 없기를 가슴조일 정도로 비좁을 만큼 도시와 그 속의 혼탁함으로부터 저만치 비켜 있는 곳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개발로 살려낸 "자연의 호흡"이 풍만하다.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 "숲 체험코스"와 잘 설계된 "숲 가꾸기 체험코스"로도 이름을 날릴 자격을 갖추었다.

물안개와 낮은 구름에 반사된 아침 햇빛이 사방을 환히 밝혔다.

뒤쪽 산 위로 널찍이 난 등산로를 올랐다.

쭉뻗은 삼나무와 자작나무 등이 도열해 어둑어둑한 등산로는 산의 4분의 3 쯤에서 두갈래로 갈렸다.

이때부터 갈색 흙길이다.

도심 시멘트바닥에선 느낄수 없는 흙의 푹신한 감촉이 즐겁다.

등산로 중간쯤 전망대처럼 탁 트인 곳에서 내려다보는 휴양림은 "녹음의 바다"다.

조성된지 얼마 안돼 휴양림 숙박시설을 따라 일자로 드러나는 황토마당과 산 높은 곳을 가로지르는 고압전선이 눈에 좀 거슬리긴 했다.

산음마을의 주민협의체에서 운영하는 작은 식당(산림문화휴양관 내)에서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고 숲 체험코스를 따라 올랐다.

오전 10시.

산림욕을 하기에 가장 좋다는 시간이다.

러시아말로 "식물"(phyton)과 "다른 식물을 죽인다"(cide)는 뜻의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맑은날 오전 10~12시)는 때다.

숲해설가의 달변에 모두들 넋을 잃었다.

"이건 자작나무예요. 숲의 여왕입니다. 신라 천마총에서 발견된 모자와 말이 뛸 때 흙튀김을 막기 위해 쓴 천마도 장니도 이 나무로 만들었대요. 북구에서는 이 나무 수액으로 충치예방제를 만든다고 합니다"

나무에 관한 얘기가 신기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모기를 쫓는 산초나무"를 만져보고 "뽕나무가 방귀를 뿡하고 뀌자 대나무가 대끼놈하니 참나무가 참아라 하던 동화"를 기억하느냐며 설명하는 참나무의 종류도 헤아려 본다.

고로쇠나무와 단풍나무를 구분하는 방법도 어렵지만 이젠 알겠다는 표정이다.

녹음기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기생식물 "겨우살이"를 뒤로하고 계곡물 맑은 곳의 대사초 잎을 뜯어 풀피리도 불어본다.

1.5km의 숲 체험코스를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은 한시간 정도.

시간은 도둑맞은 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음은 숲 가꾸기 체험코스.

잔가지를 쳐주고 병든나무는 솎아내고 풀베기 작업을 하다보니 모두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참여한 아이들도 모두 힘든 줄을 모르겠다고 했다.

숲을 가득 채운 음이온의 효과도 있을 터이다.

아마 숲과 나무에 대해 새로이 싹튼 애정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 게 더 큰 이유인 것 같았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