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면한 우리 경제의 문제는 그 운영에 대해 시장 관측자들과 참여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의존도가 높고 시장의 힘이 점증하고 있는 경제 여건에서 국내.외 권위 있는 평가 기관이나 시장분석가들의 견해는 경제 각 부문의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더욱이 지난날 고도성장기의 자산위주 투자성향이 점차 미래가치를 중심으로 한 투자형태로 전환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은 경제의 앞날을 예측하는 가늠자가 되고 있다.

지수상으로 나타난 견실한 경제활동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지속적으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여기에다 무역수지의 흑자규모는 예상을 훨씬 밑돌고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인상과 사치성 소비의 과열 현상이 저효율 고비용이라는 지난날의 악몽을 되살려 불안은 증폭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동안 신속하고 과감한 개혁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예상을 앞지른 경제회복을 이룩했으나 이를 정착시킬 심도 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지 못함으로써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시장참여자들의 신뢰를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하루속히 경제의 안정성장을 확보하려는 개혁의지를 분명히 하고 특히 금융시장에 만연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먼저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신뢰를 흔들리게 하는 금융기관의 부실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해 이를 정리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1차적인 금융부실 해소와 구조조정이 전체 경제에 기여한 신뢰 회복을 생각할 때 투신을 비롯한 제2금융권의 부실과 대우그룹의 파탄으로 증대된 금융권의 부실정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동안 시장에서 일어난 여러차례의 유동성 위기를 그때마다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불안을 가중시키고 불확실성을 누증시켜왔다.

이미 일어난 손실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누군가가 책임지고 이를 정리하지 않는 한 시간이 갈수록 그 부담과 비용은 커가게 마련이다.

당연히 원인을 가려 부담책임을 따져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날 불확실성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면 막연히 미루기보다는 정부가 나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이를 해소하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전체경제에 미칠 피해를 막아야 한다.

하루속히 투신업계를 비롯한 전 금융계의 부실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해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의 공적자금을 확보해 배수의 진을 치고 그 정리를 서둘러야 한다.

공적자금을 기존 부실 보전에 필요한 비용으로만 생각해 그 조성을 금기시하고 있으나 운영에 따라서는 전체경제에 대한 더 큰 피해를 예방하고 비용을 줄여 주는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

책임 있는 당국이 금융부실의 정리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합리적 방법으로 공적자금을 조성해 효율적으로 집행할 제도와 절차를 갖춘다면 그것으로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다음으로 공적자금에 의한 부실정리는 시장기구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미 재산관리공사뿐 아니라 전문적인 구조조정기관이 출현해 적극적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매입 정리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시장기구를 활용해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투명하고 효율적이다.

부실채권을 금융기관이 자체의 노력이나 시장에서 매각을 통해 정리할 수 있다면 자율적인 경영방침에 따라 신속하게 부실정리를 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책임도 분명히 할 수 있다.

당국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립하기 위한 엄격한 자산 평가기준을 수립해 이에 따른 대손충당금 적립 등 자본충실을 기하도록 한다면 시장을 통한 부실정리는 크게 촉진 될 것이다.

부실 정리로 BIS등 자본건전성을 위협받는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적기시정조치에 의해 엄격한 자구행위를 요구한다면 조직구성원 모두가 위기의식을 갖고 대처함으로써 잡음 없이 신속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고 개별 금융기관의 전략에 따라 자율적으로 영업의 특화나 제휴,그리고 합병 등 업계의 구조조정도 자연스럽게 유도될 것이다.

끝으로 이 과정에서 공적자금에 의한 자본 지원이 부득이 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후순위채를 매입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력에 의한 존립이 불가능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예금의 원리금을 보장한 정부의 입장에서 자본투입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기관은 지주회사를 설립해 통합 운영함으로써 정부가 주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갖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서둘러 다른 기관들의 개혁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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