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속에 올해는 더위도 예년보다 심할 모양이다.

평년보다 4~9도나 높은 무더위속에 지난주 남부지역 대부분은 완연한 여름 날씨를 나타냈다.

덕분에 여름이 성수기인 관련 산업분야는 예년보다 훨씬 일찍부터 바빠지게 됐다.

여름철에 부쩍 바빠지는 곳 중의 하나가 맥주업계다.

맥주의 최대 성수기가 여름이기 때문인데, 특히 한국의 경우 올해 맥주회사 설립 기준이 대폭 완화될 전망이어서 관계자들이 더 한층 부산을 떨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맥주업계의 황제는 미국 미조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1백48년 역사의 앤호이저 부쉬(Anheuser Busch Companies,Inc.)다.

2만3천여명의 직원들이 연간 14조원의 매출을 올려 1조6천8백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싯가총액 30조원짜리 회사다.

연간 맥주 생산량이 1백20억l로 미국 전체 맥주 생산량의 절반, 그리고 한국 전체 생산량의 7배다.

매출액면에서 미국 시장점유율 47%로 19%의 밀러나 9%의 쿠어스를 완전히 압도한다.

게다가 절대 소비량면에서 미국 맥주시장이 90년대 들어 연평균 0.3%씩 줄어드는 사양화 길을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자의 시장을 빼앗으면서 매출액면에서 연평균 4%, 순이익면에서 연평균 8%가 넘는 고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앤호이저 부쉬라는 회사이름은 1852년 창설된 바바리안 맥주사를 1860년에 인수한 에버하드 앤호이저와 1880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그의 사위, 아돌푸스 부쉬, 두 사람의 성을 따 1879년에 지어진 것이다.

앤호이저 부쉬는 사실상 아돌푸스 부쉬 33년 재임기간중 지금의 모든 영광을 거의 다 이뤄냈다.

남들이 지역시장에 만족해할 때 전 미국을 석권할 생각으로 당대 발명품이었던 기계식 냉장고를 최초로 도입했고 이를 기차역마다 설치해 제품이 더 멀리 신선하게 배달될 수 있게 했다.

나중에는 아예 냉장열차 차량을 만들어 제품을 운송했고, 업계 최초로 저온살균법을 도입해 품질 관리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브랜드 관리와 시장 분할법에도 일찍 눈을 떠 보통맥주 버드와이저와 고급맥주 미켈롭으로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

1901년에 이미 한국의 1990년도 생산량에 맞먹는 1억2천만l를 생산했다.

모든 주류제품의 생산과 소비를 일체 금지한 금주법이 시행됐던 1919년부터 1933년사이 3대 사장인 오거스트 부쉬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과즙음료 이스트 시럽 등으로 다각화해 명맥을 유지했다.

금주법이 폐지된 후 4대 사장인 아돌푸스 부쉬 3세때부터는 뛰어난 마케팅으로 선두 자리를 공고히 지켜 오고 있다.

사회적으로 죄악시되고 부도덕한 제품으로 인식되는 술을 만드는 기업의 수장들답게 부쉬 가문의 경영주들은 과단성 있고 공격적이어서 현재의 6대 최고경영자인 오거스트 부쉬 3세는 38세때였던 1976년에 아버지를 몰아내고 경영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파티 보이"라고 불릴 정도로 망나니로 대학도 다 못마쳤으나 리더십은 뛰어나 이사진을 자기편으로 포섭할 수 있었다.

90년대 들어서는 맥주의 절대 소비량이 주는 데다 또 성인으로 자라난 X세대와 그 뒤를 잇는 Y세대들이 "아버지의 맥주"를 버리는 조짐을 보여 위기의식이 감돌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나이 35세의 오거스트 부쉬 4세가 95년부터 마케팅 담당 부사장을 맡은 후 맥주 업계뿐만 아니라 전 업종에서 최고의 광고로 꼽히는 기발한 광고들을 잇따라 히트시켜 신세대와 쉰세대의 마음을 몽땅 사로잡고 있다.

현 회장은 아들이 경영권을 승계하기를 바라지만 이들 부자의 지분율은 고작 1%라 험로가 예상된다.

설사 부쉬 4세가 왕회장 소망대로 2003년 경영권을 승계한다 해도 가족 경영은 그로써 마지막일 것이다.

전문위원 shin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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