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리 <전 미국방장관>

지난 20년간 아시아 태평양지역은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같은 집단 지역방위체제가 없는 가운데 미국의 안보정책 안에서 안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손쓰기 힘든 일련의 사건들이 이 지역의 안보체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은 세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 전방에 배치된 군사력의 대치 속에서의 상호조약준수.

둘째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존중.

셋째 핵확산방지 등이다.

그러나 이제 세 원칙들이 흔들리고 있어 이 지역에 분쟁의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아.태지역의 안보가 위협받게 된 첫번째 이유는 그간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는 정치분위기를 만들어줬던 경제번영이 고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 위기를 통해 이제 모든 국가는 이웃나라의 경제실책에 의해 얼마간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중국은 지난 2년간 관료들이 밝힌 것보다 실제 경제성장률 낙폭이 커 경기호황이 퇴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은 이 나라의 비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을 낱낱이 공개해 최악의 경우 대량 실업,사회.정치적 불안 가중,지역전체의 안보 위협이라는 시나리오로 발전할 수 있다.

두번째 위협요소는 미국과 중국의 대치 가능성이다.

현재 중국은 아.태지역에서 경제 정치 군사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지난 몇년간 순탄치 않았다.

WTO에 중국을 가입시키기위해 미국을 찾았던 주룽지 총리가 성과없이 귀국하면서 개혁세력의 영향력이 감소했고 미국과의 관계도 퇴보했다.

이어 지난해 코소보사태 와중에 유고 벨그레이드에 있는 중국 대사관이 폭격됐다.

중국인들은 중국정부가 대대적으로 미국의 군사기밀을 훔쳐왔다고 미국이 비난한 직후 일어난 이 사건을 우발적인 사고라고 생각지 않았다.

리덩휘 대만 총통의 "두개의 중국"발언과 천수이볜 신임 총통 선출도 이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대만은 중국의 위협에 대항해 영공방위를 위한 군사장비지원과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을 미국에 요구했으며 중국은 모스크바의 정책적 도움을 얻기위해 협상을 시작했다.

군비경쟁을 우려하는 중국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군비경쟁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중국의 미사일 배치에 의해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대만을 타깃으로 미사일 배치를 강행한다면 미국은 대만에 미사일방어체제를 제공해 중국이 우려하는 군비경쟁이 초래될 것이다.

지역 안보를 위협하는 세번째 원인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생산하고 운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 이들이 분쟁중,또는 실수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안정을 재정립하기 위한 새로운 안보 전략에는 다음 세가지 조건이 고려돼야 한다.

첫째 대량살상 무기가 전례없는 파괴력을 가지게 된 21세기에는 전쟁은 절대로 외교정책의 도구가 될 수 없다.

둘째 통신과 교통의 발전으로 우리는 모두 한 세계에 속하게 됐다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미국의 전략은 동맹국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한 협력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셋째 미국의 군사 경제 기술적 우위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세계의 리더가 된 현실은 미국이 의도한 바가 아니며,때로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이 국제적인 이슈에 대해 아예 손을 놓고있거나,반대로 주제넘게 참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발생한다.

몇년전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당시 총리는 나에게 "미국은 독점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도 이를 제국주의적인 목적에 사용하지 않은 역사상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끔은 미국이 그 힘을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안보와 안정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기를 바란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 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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