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39) 사장은 볼 때마다 모습이 다르다.

최근 짧게 자른 머리와 무테 안경은 중국 영화감독 장예모를 연상시킨다.

처음 만났을 때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의 이미지는 간곳 없다.

한때는 수염을 기른 덥수룩한 얼굴로, 한때는 다채롭게 물들인 머리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재미있잖아요. 한 스타일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지루해서 제가 견디지 못해요. 적어도 계절마다 한번씩은 변화를 줘야죠"

1994년 설립된 국내 민간기업 최초의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인 "아이네트(현 한국피에스아이넷)의 창업자"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일까.

새로 받은 명함에 적혀 있는 "아이월드 네트워킹 대표 허진호"라는 직함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다.

허 사장은 기술이론과 현장흐름을 꿰뚫는 자타공인의 인터넷전문가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학위를 땄고 삼보컴퓨터에서 마케팅을 익혔다.

허 사장이 아이네트를 창립했을 당시는 국내 ISP 태동기.

아이네트를 한국통신 데이콤에 이어 국내 3대 ISP 업체로 성장시켰다.

ISP라는 말을 국내 처음 도입했으며 월드와이드웹(WWW)을 국내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국내 인터넷벤처 스타 1호"인 허 사장은 올초 "성공한 벤처의 최고경영자(CEO)는 재미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안정궤도에 오른 아이네트 대표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다.

이후 3개월여만에 새로운 인터넷벤처기업을 차려 "제2의 벤처인생"을 꾸리고 있다.

""재미있다, 없다"라는 말은 제가 즐겨쓰는 표현이고요. 정말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나선 것뿐입니다. 아이네트란 회사는 이미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제가 더이상 남아 있어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허 사장은 헤어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것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이는데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밤을 지새우면서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이 체질이란다.

새로운 회사를 차리고 일정단계까지 성장시키는 것까지는 자신있지만 회사를 안정적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전문경영인의 역할은 자신의 능력밖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미국에서는 창업후 성장기가 지나면 창업자가 퇴진하는 것은 관례라고 소개한다.

창업자가 오히려 최후까지 경영인을 겸직하려고 한다면 곧 한계에 부딪친다는게 허 사장의 진단이다.

지난주초 아이월드네트워킹의 창립기념식이 열렸다.

"허진호가 돌아왔다"고 공식적으로 알리는 이 자리에는 3백여명의 업계 인사가 참석, 허 사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허 사장이 새로 시작하는 사업은 기업대상의 ASP(응용소프트웨어제공).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망을 운영하는 기업이 환경에 맞게 네트워크를 잘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게 하는 "넷캐어"와 기업 e메일, 통합메시징서비스(UMS)를 아웃소싱해 주는 "메시지캐어"가 주력 서비스다.

"사업초기에 할 말은 아니지만 이 회사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제 때에 물러나는 것 또한 창업 못지않게 중요한 벤처정신입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