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무역업무를 하던 이모씨는 IMF한파 전후로 퇴직했다.

다른 동료들은 점포 창업을 하기도 했지만 이씨에게 점포 사업은 너무 소규모로 보였고 활동적인 자신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가 택한 업종은 무역업,그중에서도 원단 수출이었다.

무역업은 팩스와 직원 한 두명만 채용하면 돼 1천만~2천만원 정도의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었다.

특히 이씨는 대기업 근무 당시 직원 3~4명으로 월 2억원 이상의 순수입을 올리는 원단 무역상들을 보면서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더욱이 무역업은 어음이나 외상거래가 필수인 내수 시장과 달리 현금 수입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명동에 사무실을 얻고 직원도 채용했다.

자신은 바이어 발굴을 위해 동남아 멕시코 아프리카 유럽 등 원단 수출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발로 뛰어다녔다.

한번 외국으로 나가면 수백만원씩 경비가 들었지만 무역업의 성패는 바이어 발굴이라고 판단,비용을 아끼지 않고 거래처를 찾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향후 거래를 할만한 바이어를 발굴해 실무를 시작했다.

이씨는 이제 돈 버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이 삐거덕 거린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였다.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아니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을 걸로 여겼던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단 수출업체는 제조업체와 중간무역상으로 분류되는데 제조업체가 아닌 중간무역상들은 가격협상에서 제조업체보다 훨씬 불리했다.

제조업체들은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얼마든지 마진율을 조정,수입업자에게 유리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고 물량 조절도 가능했다.

하지만 중간도매상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협상할 수는 없었다.

바이어가 원한 것은 중간무역상의 마진이 없는 싼 가격이었다.

즉 바이어 발굴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가격협상이라는 점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었다.

중간무역상은 가격협상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으로 무시했던게 화근이었다.

그가 모델로 삼은 것은 현재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소규모의 중간무역상들.

하지만 이씨는 그 업체들의 겉모습만 봤을 뿐 그들이 오랜 기간 무역업을 하면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불리한 가격 경쟁력을 만회할 수 있는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간과했던 것이다.

여기에다 중국 인도가 싼 가격을 무기로 중요한 한국의 경쟁국가로 급부상하고 있어 앞으로는 가격경쟁만으로도 승부를 겨루기가 어렵고 고급 질 경쟁으로 원단 수출방향이 바뀌어야만 이탈리아 등과 경쟁할 수 있다는 점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결국 1년만에 그는 무역업에서 손을 들었고 짧은 기간동안 수천만원을 잃고 말았다.

[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천리안 GO LK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