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다!"

버스안이 술렁거렸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프랑스 파리를 뜬지 8시간째.

진초록 목초지와 샛노란 유채밭이 꼬리를 물던 프랑스 시골풍경에 지쳐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왼편 차창 너머 먼 곳에 하얀 투구를 쓴 삼각봉우리들이 구름의 호위를 받으며 우뚝 서 있었다.

버스가 갑자기 빨라진 듯했다.

정물화같던 스위스의 바깥 풍경도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울퉁불퉁 근육질의 바위산들이 버스와는 반대방향으로 달음박질쳤다.

버스는 석양으로 더욱 짙푸른 브리엔즈호수를 자세히 펼쳐 보이며 마지막 숨을 가다듬었다.

"호수 사이의 마을"이라는 뜻의 인터라켄을 가로질렀다.

석회질로 인해 잿빛으로 보이는 계곡물을 거슬러 목적지인 라우터부르넨에 닿았다.

라우터부르넨(해발 7백96m)은 융프라우 아랫자락 깊게 팬 U자형 계곡에 자리한 작은 마을.

칼로 잘라낸 듯 수직으로 서 있는 높은 바위산이 감싸고 있다.

그 바위산 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여러 개의 폭포가 장관이다.

장마철 녹음을 가르고 떨어지는 설악산 높은 곳의 이름없는 폭포들과 닮았다.

위쪽으로 터진 계곡 사이 저 너머엔 "세자매"로 불리는 스위스 알프스의 상징적 봉우리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버티고 있다.

세 봉우리의 만년설, 주변 산꼭대기까지 융단처럼 깔린 초지와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작은 집들이 어우러져 동화책의 예쁜 삽화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튿날 오전 융프라우에 오르기 위해 라우터부르넨역에서 열차를 탔다.

미끄럼방지를 위해 톱니바퀴를 단 등산열차다.

클라이네 샤이덱(2천61m)에서 1시간 쉰 다음 열차를 갈아탔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철도역 융프라우요흐를 왕복하는 열차다.

레일은 아이거와 묀히의 암반층을 뚫어 만든 터널속에 놓여 있다.

열차는 별로 힘들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이거북벽에 위치한 아이거반트역(2천8백65m)과 아이스미어역(3천1백60m)에서 5분씩 정차했다.

두 역에 만들어 놓은 터널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설원은 숨막힐 정도다.

드디어 융프라우요흐(3천4백54m).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했다.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구토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바깥에 만들어 놓은 짧은 융프라우체험로로 발을 내디뎠다.

융프라우는 배타적이었다.

눈발 섞인 바람은 몸을 날려버릴 것 같았다.

모든 파장의 빛을 튕겨내는 만년설은 선글라스를 안낀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유럽 최고(3천5백71m)의 관망대 스핑크스테라스에서 바라본 융프라우도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겹겹의 망사천으로 만든 치마를 두른 듯했다.

얼음궁전은 신비로웠다.

알프스에서 가장 긴(22km) 빙하인 알레취빙하 아래쪽에 만들어 놓은 얼음궁전은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감돌았다.

아치형의 얼음동굴, 얼음을 깎아 만든 야생동물 및 전시물로 눈을 즐겁게 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e메일 부스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올라갈 때와는 달리 반대편 그린델발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5월의 오후 융프라우의 햇살은 따사로웠다.

그리고 여유로웠다.

안개가 걷힌 또렷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융프라우는 이기기 힘든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스위스 융프라우=김재일 기자 kjil@k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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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메모 ]

배재항공여행사(02-733-3313)는 융프라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8일 일정의 "버스.호텔프리투어" 상품을 판매중이다.

프랑스 파리, 스위스 베른 인터라켄 라우터부르넨 루체른, 독일 퓌센 하이델베르크를 둘러볼 수 있도록 꾸몄다.

1인당 1백19만원.

패키지여행과 자유배낭여행의 장점을 취한게 특징이다.

나라별 도시별 관광정보를 주고 각자 자유로이 관광하도록 한 뒤 정해진 시간에 모여 옮긴다.

이동할 땐 독일 태터아헨사의 코치(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로 이동하는 거리는 2천여km.

좀 부담스럽지만 각 나라의 시골마을 풍경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장급수준의 호텔, 캠핑장 또는 침대차로 변형할 수 있는 코치에서 숙박한다.

라우터부르넨에서부터 아침 저녁식사를 직접 해먹어 양식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도 불편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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