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이름모를 우리꽃과 우리나무.

서양꽃에 비해 화려함은 덜하지만 강인함은 몇배다.

"햄버거세대"가 "붕어빵세대"보다 체격이 크다해도 체력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서양꽃에 밀려 산속으로 떼밀려갔던 우리꽃과 우리나무가 마침내 보금자리를 찾았다.

무명씨로 살아온 인고의 세월을 접고 당당히 자신의 명패도 내걸었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국립공원내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이 그곳.

이땅에 자라나는 풀과 나무들의 국내 하나뿐인 안식처다.

이곳 야외식물원에 들어서면 노랑무늬 붓꽃, 보라색 제비꽃, 빨간 금낭화와 큰앵초, 노란 산괴불주머니, 하얀 두메양귀비 등 형형색색의 꽃이 한창이다.

저마다 내뿜는 향기는 관람객들을 아찔하게 할 정도.

3만3천여평 부지의 이곳 식물원은 지난해 7월 개장했다.

지금까지 전체의 절반 정도만 공개됐지만 다음달부터는 전면 개방된다.

이곳의 식구는 자생초본(풀) 1천여종과 목본(나무) 2백여종 등 총 1천2백여종.

천연기념물인 미선나무, 섬백리향, 망개나무, 병아리꽃나무 등도 동거한다.

국립공원내의 천연숲과 계곡, 동서남북으로 뻗는 산세는 각종식물들이 공존할 수 있는 서식조건을 제공한다.

천혜의 생태식물원이다.

하지만 "원예화된 외래식물정원"은 아니다.

인공의 "악취"는 적고 자연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기존 숲에 좁은 산책로를 만들고 주변의 풀과 나무들은 그대로 둔채 새식구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1백년 이상의 소나무와 신갈나무 등은 원래 그자리에 있었고 그 곁에 구상나무 살구나무 삼지구엽초 큰앵초 할미꽃 등이 식재됐다.

이곳엔 전세계 45종뿐인 개불알꽃이 25종이나 자라고 있다.

세계 최대규모다.

개불알꽃은 이달 하순께 빨간 꽃을 피운다.

동자꽃 패랭이 꽃창포도 내달중 개화하기 위해 꽃망울을 맺었다.

야외식물원의 길다란 산책로를 따라간다.

소나무 껍질을 깔아놓아 발에 포근함이 전해온다.

두릅나무와 신당나무 살구나무 곁에 삼지구엽초 큰앵초개별꽃 꽃창포 등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토종식물들은 서양식물과 달리 척박한 땅에서도 건강하게 뿌리내리는 자생력을 갖췄다.

모양새는 서양꽃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순박하게 느껴진다.

꽃들의 숨은 내력은 우리 정서에 훨씬 가깝다.

폭설에 갇혀 암자에서 굶어 죽은 동자의 무덤가에 핀 동자꽃은 마치 동자의 안색처럼 발그레하다.

딸네 집에 가다가 죽은 할머니 무덤가에 피어난 할미꽃, 먼저 숨진 지아비의 마음을 담은듯하다는 홀아비꽃대, 사랑을 못다 이루고 하늘나라로 간 공주의 화신인 산목련.

하나같이 애달픈 사연을 간직했다.

에델바이스는 알프스산정에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한다.

솜다리가 그것.

독일어로 "품격높은 백색(노블화이트)"이란 뜻이나 우리이름은 "솜털을 뭉쳤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솜다리는 고산지대에 서식하기 때문에 꽃잎의 털로 공중의 습기를 흡수해 뙤약볕 아래서 견뎌내는 힘을 얻는다고 한다.

실내식물원도 여럿이다.

우리나무를 돌과 화분 등에다 심어놓은 분경분화관, 우리꽃을 주제로 한 정원을 만든 조경소재관.

특히 구절초 창포 백리향 등 "토종허브"로 가꾼 정원은 인상적이다.

이들 화초는 향을 즐기면서 먹을 수 있다는게 공통점.

희귀, 멸종위기 식물 사진들을 모은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우리꽃 사진과 엽서 서적 등도 판매된다.

식물원측은 일반인들에게 우리꽃과 풀의 생태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개발중이다.

다음달에는 사람과 동물관련 명칭의 야외식물원을 공개할 예정.소경불알 중대가리 미치광이꽃대 처녀치마 노루오줌 꿩의 비름 범부채 개미취 등을 대형군락지에 모아둔 것.

또 독성식물인 미치광이풀 진범 투구꽃 독미나리 등을 함께 심어놓은 식물원도 오픈할 계획이다.

오대산=유재혁 기자 yooj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