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국 <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jangyk@hmpj.com >

과일과 빵을 사러 막내딸을 데리고 동네 슈퍼마켓 쪽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딸의 팔뚝에 난 큰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이 여간 애처롭지가 않았다.

물으니 딸은 며칠 전에 헌혈을 했고,채혈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적십자사 직원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해 분했던 딸아이는,아빠로부터 위로를 받고서야 기분이 풀렸는 지 대수롭지 않은 듯 영광의 상처로 얼룩진 팔로 아빠의 팔짱을 끼는 것이었다.

건강한 피의 확보는 성공적인 의료를 담보하는 최소한의 요구일 터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의 현실은 헌혈이 피의 수요를 따르지 못해 건강을 해쳐가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매혈이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고,지금도 피를 수입해서 쓰는 형편이다.

헌혈의 중요성은 "나 자신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피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뜻 나의 피를 나누어주는 일에 무척 인색한 것 같다.

이기주의가 이 사회분위기를 휩쓸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대한적십자사는 꾸준히 헌혈사업을 계속해 오고 있지만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한다.

학생들과 군인들이 건강한 피의 중요한 공급원이 되고 있을 뿐,빵과 주스와 선물을 준다해도 헌혈에 대한 전 국민적인 호응은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홍보만으로는 자발적인 헌혈을 유도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피는 꼭 필요한 만큼 헌혈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면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 최소한의 의무로서 헌혈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자발적인 헌혈의 분위기가 정착될 때까지만이라도 한시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양의 피를 사회에 제공할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물론 헌혈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러한 의무를 부담시켜서는 안된다).

종교적 신념이나 개인적 사정으로 헌혈하기 어려운 사람은 그 대신 수입에 비례한 헌혈성금을 내도록 하면 될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는 헌혈제도를 현행 의료보험체계 속으로 편입시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만약 이와 같은 "의무화"방안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헌혈한 사람에게는 그 횟수를 감안해 취직이나 승진 등에서 가산점을 주도록 하는 방안이라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았으면 좋겠다.

선은 이를 알면서도 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죄가 되는 것이다.

헌혈과 같은 선행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386세대 국회의원 당선자들,각종 고시합격자들, 재벌2세인 젊은 기업총수들,미스코리아 후보들,유명 체육인,연예인들과 같은 분들이 웃는 모습으로 헌혈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한번 보고싶다.

아니 자주 보고싶다.

그 헌혈대열에 내가 낄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