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朴총리의 '마이웨이'
이날 일정에 잡혀 있지 않던 일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총리비서실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한나라당에서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진퇴여부를 결정하라"고 다그쳤고 시민단체들로부터도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오전 11시에 현안을 보고할 예정이던 경북도지사는 불편한 심기를 거스릴까봐 공항사정을 핑계로 이날 서울행을 취소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박 총리가 명의신탁을 이용,조세회피를 꾀했다는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비서실에서도 난감해했다.
그러나 박 총리가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자리를 훌훌 털고 예전의 의욕적인 자세를 보이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같은 박 총리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비서실 관계자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는 "총리께서 지난 4.13총선때 투표가 끝나자마자 "강원도 삼척현장에 가보자"고 갑자기 제안하셨고 영종도 시찰도 2시간 전에 불쑥 연락해 가자고 하셨다"고 말했다.
박 총리는 17일 행정법원으로부터 판결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소송진행상황과 명의신탁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고 총리실 관계자는 전했다.
조영장 비서실장으로부터 판결문을 전달받은 자리에서 박 총리는 "명의신탁이 뭐야"라며 판결문 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날 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대책회의를 갖는 동안 박 총리는 비서진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고 황당해했다며 박정호 수석비서관이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공무원중 최고의 도덕성을 겸비해야 할 행정부 수장이 사법부로부터 조세회피 판결을 받은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박 총리는 그간 쌓은 강직한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게됐다.
박 총리는 17일 간략히 유감표명을 한데 이어 18일에도 "국민의 정부와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거듭 고개숙여 사과드린다"며 참회의 뜻을 표했다.
친정인 자민련이 민주당과의 결별을 선언했을 당시에도 총리직에만 전념하겠다며 흔들리지 않던 박 총리였다.
이러한 박 총리가 세간의 의혹을 뒤로한 채 과연 "나의 길을 갈 수 있을지" 그의 거취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k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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