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명의신탁 문제로 향후 거취가 주목되는 박태준 총리가 18일 오후 테헤란로에 있는 벤처기업을 방문했다.

이날 일정에 잡혀 있지 않던 일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총리비서실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한나라당에서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진퇴여부를 결정하라"고 다그쳤고 시민단체들로부터도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오전 11시에 현안을 보고할 예정이던 경북도지사는 불편한 심기를 거스릴까봐 공항사정을 핑계로 이날 서울행을 취소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박 총리가 명의신탁을 이용,조세회피를 꾀했다는 부분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비서실에서도 난감해했다.

그러나 박 총리가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자리를 훌훌 털고 예전의 의욕적인 자세를 보이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같은 박 총리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비서실 관계자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는 "총리께서 지난 4.13총선때 투표가 끝나자마자 "강원도 삼척현장에 가보자"고 갑자기 제안하셨고 영종도 시찰도 2시간 전에 불쑥 연락해 가자고 하셨다"고 말했다.

박 총리는 17일 행정법원으로부터 판결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소송진행상황과 명의신탁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고 총리실 관계자는 전했다.

조영장 비서실장으로부터 판결문을 전달받은 자리에서 박 총리는 "명의신탁이 뭐야"라며 판결문 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날 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대책회의를 갖는 동안 박 총리는 비서진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고 황당해했다며 박정호 수석비서관이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공무원중 최고의 도덕성을 겸비해야 할 행정부 수장이 사법부로부터 조세회피 판결을 받은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박 총리는 그간 쌓은 강직한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게됐다.

박 총리는 17일 간략히 유감표명을 한데 이어 18일에도 "국민의 정부와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거듭 고개숙여 사과드린다"며 참회의 뜻을 표했다.

친정인 자민련이 민주당과의 결별을 선언했을 당시에도 총리직에만 전념하겠다며 흔들리지 않던 박 총리였다.

이러한 박 총리가 세간의 의혹을 뒤로한 채 과연 "나의 길을 갈 수 있을지" 그의 거취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