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폴 매크러컨 미시간大 교수 ]


1968년 10월8일 시사주간지 타임,라이프사의 제임스 A 리넨 사장 일행이 전경련을 방문했다.

이들은 아시아 각국을 순방하고 있었다.

전경련은 이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내용은 1)미국 대통령선거 전망 2)베트남 사태의 실상 3)미국의 대외무역 정책 등 당시로서는 중요하고도 흥미있는 과제들이었다.

리넨 사장은 이 간담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베트남 사태는 아시아의 민족주의 감정과 연결돼 있다.

호치민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 민족주의자에 가깝다.

현 미국 정부는 이 점을 잘 이해 못한다.

그러니 미국의 대 베트남정책은 우려된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우리 정서와는 거리가 먼 베트남정세 분석이다.

당시 한국은 베트남파병을 막 시작했을 때다.

38선의 연장으로 베트남전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 필자는 물론 간담회에 참석한 경제인들은 모두 놀랄 수밖에.

간담회가 끝날 무렵 필자는 리넨 사장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 한국은 소련 중공 등 공산 대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들과 세력균형 속에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야 할 지정학적 운명에 있다.

소.중 두 나라를 견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경제계는 미국 정책 요로와의 깊은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연대를 마련할 인물을 리넨 사장이 소개해 주길 바란다"

리넨 사장은 언론계의 거물답게 필자의 부탁 요지를 재빠르게 파악했다.

"한국 정부의 대미 외교도 중요하지만 민간외교,특히 경제계가 주축이 된 대미 채널의 필요성에 동감하오.본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필자가 부탁한 사실조차 잊어버릴 무렵 리넨 사장으로부터 서신이 왔다.

미시간 대학 석좌 교수인 폴 매크러컨 박사를 소개했다.

미국 경영학회 회장도 역임했고,당시 닉슨 대통령 경제자문 위원도 맡고 있던 분이다.

워싱턴 정계에 넓은 인맥을 갖고 있으니 한국에 초청해 보라는 것이었다.

전경련 초청에 의해 매크러컨 교수가 1972년 6월 내한했다.

공개 강의도 부탁했다.

강의 제목은 "미국의 경제정책과 아시아"였다.

바로 10개월전인 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전세계에 일대 충격을 준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세계 언론들은 이를 "닉슨 쇼크"라고 불렀다.

내용인 즉,전후 세계경제 질서를 지탱해 온 미 달러와 금태환정지,달러화에 연계된 고정환율 제도의 변동환율제 전환이었다.

특히 만성적인 미국 대외 무역적자를 억제하기 위해 수입에 10% 부가가치세를 부과했다.

그만큼 한국의 대미수출도 어렵게 됐다.

매크러컨 교수는 그의 강연에서 당시 "닉슨 쇼크"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후 25년간 자유경제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온 브레턴 우즈(Bretton Woods)체제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미국의 단독 힘으로,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의 희생으로 자유무역과 세계 금융제도를 떠받쳐 왔다.

이로부터의 이득은 엄청난 무역 흑자국인 일본과 독일 등이 독식하고 있다.

앞으로 이는 시정돼야 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더 이상 세계 경찰국가와 자유무역 수호를 감당할 수 없다.

세계 새 경제부국인 일본 독일 등이 미국과 함께 공동 부담해야 한다"

솔직히 필자는 매크러컨 교수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에는 잘 몰랐다.

대부분의 국내 학자들도 그러했다.

그런데 점차 일본 엔화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후 엔화는 전후 1달러대 3백60엔에서 2백40엔,1백80엔, 드디어 1백엔대까지 치솟았다.

일본 경제는 이제 끝장났다고 아우성쳤다.

그러나 일본 산업경쟁력은 악착같아 3배이상 뛴 엔고에 대응해 나갔다.

필자는 매크러컨 교수와 함께 갓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해 울산공업단지를 시찰했다.

갈 때에는 이야기하고 가느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올 땐 4~5분 달려도 앞에서 오는 차나 뒤에서 따라오는 차를 볼 수가 없었다.

대전을 지날 무렵 매크러컨 교수도 교통량이 적음을 느꼈는지 혼잣말처럼 "오래간만에 교통 혼잡이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상쾌하다"고 말했다.

순간 나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고속도로는 잘 됐으나 교통량이 너무 적다는 말이었다.

< 김입삼 전 전경련 상임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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