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무디스사의 "한국은행 분야 -아직도 신뢰성 위기에는 취약"이란 짧은 보고서를 계기로 국제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현재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으로는 유럽의 피치 IBCA와 미국의 무디스,스탠다드&푸어스(S&P)사를 꼽고 있다.

이들 기관보다 영향력은 덜하지만 외환위기 과정에서 미국의 Duff&Phelps사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물론 국제금융시장에서 이들 기관들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특히 개도국에 대한 투자결정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우리의 경우 이들 기관들의 평가에 의해 일희일비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 기관들이 신용등급을 조정할 경우 개도국들이 물어야 할 가산금리는 평균 0.2~0.5% 포인트가 변경된다.

특히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때가 상향 조정할 때보다 가산금리가 약 0.1% 포인트 가량 더 떨어진다.

그만큼 대외신용을 한번 잃게 되면 개도국들의 부담은 늘어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공정성,독립성,전문성을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 기관들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수익기관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외환위기 국가를 중심으로 이들 기관의 공정성에 대해 자주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본 것도 이런 연유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각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국가위험,산업위험,영업위험,재무위험을 공통적으로 고려한다.

이런 기준마저도 국가위험을 유동성 위험으로 나머지 위험들은 시스템 위험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우리처럼 외환위기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조정할 때에는 비교적 이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다.

위기극복 초기단계에는 유동성 위험의 해결정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신용등급을 조정한다.

대체로 대외신용을 지킬 수 있는 외화유동성만 확보되면 투자적격 단계로 조정되는 것이 관례다.

외화유동성 문제가 해결된 후 추가적인 신용등급의 조정여부는 시스템 위험의 치유정도에 따라 좌우된다.

다시 말해 외환위기를 낳게 한 경제체질이 개선되느냐 여부를 중시한다.

바로 이 점에 있어 이번에 무디스사가 의문을 제기한 대목이다.

문제는 대부분 외환위기 국가들이 유동성 위험을 해결한 후 시스템 위험을 해결하는 단계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에서는 "IMF 3년차 증후군"이 나타나면서 유동성 위험단계로 환원(feed-back)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신용등급은 다시 투기등급으로 떨어진다.

전형적인 예가 중남미 국가들이다.

외환위기를 당한지 무려 20여년 동안 위기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불안한 것은 이 과정을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경제내에서도 이기주의 행동이 팽배해지면서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단기외채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경제주체들의 고통이 다소 심하더라도 초기단계부터 유동성 위험과 시스템 위험을 함께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다.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경상수지흑자를 기록할 경우 유동성 위험도 함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떻게 보면 무디스사의 평가는 예견됐던 일이다.

만약 무디스사의 평가에 대해 정부가 발끈한다면 일종의 "역설적인 사대주의"라는 비난과 함께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지 모른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전문가와 언론들이 지적해온 문제이고 외국기관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누구보다 잘 홍보한 것도 정책당국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이번 무디스사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 들이고 위기극복 초기단계의 마음가짐(초심)을 갖고 개혁과 구조조정을 좀더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국민들로부터 도덕적 합의(moral suasion)를 구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책당국의 책임은 반드시 전제가 돼야 한다.

한상춘 < 전문위원 schan@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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