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 동네 시장에 나가면 외출복 차림에 시커먼 비닐 주머니를 한 두개,혹은 어깨가 휘게 몇개씩 들고 가는 여성들을 보게 된다.

결혼한 여자라는 건 얼굴만 보아도 알수 있다.

그런데 어디 놀러 갔다 오면서 부랴부랴 장을 보는 여성과 직장에서 퇴근길에 찬거리를 사들고 가는 여성은 분위기가 다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맞벌이 아내들이다.

물론 20대나 30대 초반의 맞벌이 아내들중엔 그 시간에 회사 동료들과 회식자리에 앉아있을 수도 있고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맞벌이 아내들은 자신이 직장을 가졌기 때문에 집에 남아 있는 어린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걸음이 바쁘다.

어머니는 마땅히 집에서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오랜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일을 하도록 "허락한 남편"에게 고마워서 늘 반찬도 제대로 하려고 애쓴다.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남성들이 여성의 능력을 폄하하고 승진에서 불리하게 대우하는 이유중 하나가 여성들은 직장에서도 집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에도 나가서 장을 보고 심지어는 수업시간에 나물을 다듬는 여교사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직장에서 집 생각만 하게 되는 이유는 물론 여성들의 직업 의식이 유치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여성의 직업 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원인이 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한 여자의 사회는 가정이다.

그래서 직장을 가졌던 여성도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 두고 자신의 사회인 가정에 들어앉는다.

십수년 전만 해도 여성이 직장을 가질때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 둔다는 서약을 하거나 사규에 명시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여성이 직장을 가진다는 것은 남성의 사회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남성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한다.

예전에는 남성에게 맡기기엔 성취도가 지나치게 낮다고 여겨지는 "심부름"이나 "시중들기" 같은 일이 주어지거나 심지어는 "사무실의 꽃"으로 앉아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진 지금은 그런 일을 시키거나 그렇게 취급하면 성차별이고 심지어는 넓은 의미의 성희롱이라고 여기게 됐다.

이렇게 남성의 사회로 들어가는 여성들의 필요에 맞춰 동네마다 여러가지의 유아원이나 탁아소 같은 것이 생겼고 시어머니나 친정 어머니들은 젊은 며느리나 딸의 사회생활을 보조하는 일로 육아를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제 이것은 그들 세대의 심각한 "선택의 문제"가 됐다.

그런데 아내들이 직장을 갖기 시작하던 무렵엔 직장일과 가정일을 똑같이 잘하는 슈퍼우먼이 훌륭했다.

슈퍼우먼이 되지 않으면 가정이 흔들리거나 직장을 그만둬야했다.

물론 그때의 남편은 일하는 아내가 집안과 자신의 수치였다.

훌륭하고 사랑받는 아내란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을 위해 집이라는 사회를 잘 가꾸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맞벌이 아내들은 슈퍼우먼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회에서 남성과 똑같은 능력을 발휘하려면 남성처럼 직업의식이 성숙하고 자신의 일에 경력을 쌓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집안 살림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가사 노동의 분담은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남편은 이를테면 "맞살림 남편"이다.

그런데 맞살림 남편이 집안 일에서 쓰레기 치우는 "심부름",과일 깎는 "시중들기",아내에게 군림하는 꽃 노릇만 한다면 그 노동의 질은 높아질 수 없고 직업의식도 유치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맞벌이 아내들이 남성과 똑같은 능력을 발휘하고 직업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만큼 남편들도 맞살림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내들이 직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듯 남편들도 일과후에 요리학원에 다닐수 있어야 하며 남편들의 화제 중에 살림과 관계된 것도 많아져야 한다.

남편들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음식을 만들때의 요령이나 효율적인 장보기의 자기 겸험들을 술자리에서 말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상만 해도 수치스럽다거나 혹은 여성이 득세하는 말세적 현상이라고 느낀다면 그런 남성은 결국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마침내는 어떤 형태로든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삶이란 적자 생존의 법칙에서 한치도 벗어날수 없고 또한 사회는 늘 진행되는 변화속에 존재하며 나만 시대에 따라 그 속도가 다를 뿐이므로.

ljlkj@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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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소설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소설 "절반의 실패""혼자 눈뜨는 아침""사랑과 상처""정은 늙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