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공자에게 물었다.

"스승에게도 사사로운 정이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조카가 앓을 때는 밤새도록 그 방을 드나들었어도 내 방에 돌아와서는 즉시 잠이 들었지만 아들이 앓을 때는 그 방에 한번 가본 일이 없어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애정을 직접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당시 "좋은 아버지"의 기준을 이해한다면 공자 역시 육친의 정에는 약한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어떻게 자녀에 대해 무관심할수 있겠는가.

유교의 교육적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한국의 아버지들은 "사랑방"에 격리된 권위의 화신이었다.

자녀들에게 훈계나 지시등 야단치는 말 외에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철저하게 냉담하고 무관심한 척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복종하도록 자녀를 조종했다.

엄부자모로 표현되는 전통적 부모상은 그랬다.

해마다 5월이면 온갖 대중매체들이 "좋은 아버지"의 이미지를 경쟁하듯 전달하고 있다.

많은 시간을 자녀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대화를 나눠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처방이다.

쉬운듯 보여도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이 일은 쉽지만은 않다.

그런탓으로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늘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막연한 자책감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모자부라는 이상한 풍자어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어제 한 TV가 방송한 "어버이날 특집"은 이제 아버지가 엄부는커녕 아내나 자녀들로부터 따돌림당하거나 일반적으로 이혼당하고 집밖으로 몰려 나는 음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특수한 경우이긴 해도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에 지칠대로 지쳐있는 40~50대 가장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다.

정말 새로운 가족구성원의 역할을 배우기 위해 "아버지학교"에라도 다녀야 하는 것일까.

"아버지 자격을 잃게 한 것은 바로 아버지 자신"이라고 공박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가족은 생명의 근원을 자각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정신적 무력감에 빠진 아버지들을 건져줄 가정과 사회의 처방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