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지난달 30일 폴란드의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1905~38)를 성인(聖人)으로 선포하는 뉴밀레니엄 첫 시성행사를 가졌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자신에게 나타난 예수의 모습과 그와의 대화를 일기장에 남겨 나치 치하 폴란드인들의 한가닥 희망이 됐던 인물이다.

파우스티나 수녀처럼 인간으로서 모범적이고 비범한 신앙생활을 하다 사후 영적(靈的)존재가 된 성인이 가톨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에선 성인을 ''왈리''라고 부른다.

알라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도교(道敎)의 ''신선(神仙)''도 성인과 유사한 부류에 속한다.

불교의 ''보살'' 역시 인간에서 출발해 영적인 존재가 된 경우다.

보살(菩薩)은 이미 깨달음을 얻어 성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고 중생의 고통을 위무하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초인간적 능력의 소유자를 말한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는 지장보살, 각각 지혜와 실천을 상징하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신도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돼 있다.

그중에서도 관음은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그 음성을 듣고 몸을 33가지 모습으로 변화시켜 중생을 모든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가장 친근한 보살이다.

6세기말께 삼국시대에 이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관음신앙은 지금도 한국불교의 바탕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일반신도들에게 해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현세의 구제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격하게 말해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은총의 중개자''인 가톨릭의 마리아가 신자들의 믿음의 대상이 된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부처님 오신날''을 며칠 앞두고 서울 성북구 길상사(吉祥寺) 경내에 마리아상을 닮은 석조 관음보살상이 세워졌다 해서 화제다.

작가가 수많은 성모상을 조각한 가톨릭 신자여서 나온 말일테지만 꼭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전통관음상을 현대화 단순화시킨 솜씨가 아주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을 뿐이다.

길상사의 창조적 자기변화가 한국불교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