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석한 사내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내는 자신의 선배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형, 모든 것이 부질 없어. 아이들과 마음껏 놀아줘"

해마다 5월이면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케 된다.

이즈음 세상의 빠른 변전들을 떠올려 보면 이제 확실히 가족의 의미도 전과 달라져야 하고 또 이미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가령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변화는 이제 몇 시간 단위로 눈부시게 가속화되어 전 인류가 그 가공할 혜택을 전면적으로 받고 있는 형편이다.

굳이 인터넷 열풍을 예로 들 것도 없이,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감지하기도 전에 우리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물신 앞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라니!

아, 그렇구나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었구나가 아니라 가족, 가족이라!

이미 조금씩 가족이라는 구성체도 그 밀도가 약해지고 필연성이 덜해지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인 것처럼,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새삼 이 5월에 가족 이야기, 그 가족의 의미를 묻고 싶다.

가족 구성원간의 밀도가 약해지는 현상만 보자면 사실 우리 사회의 오랜 관습을 떠올려볼 때 순기능도 적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일례로 지난날 가족 이기주의가 던져준 폐해도 적지 않았던 것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가족 개개인의 삶의 공간이 자폐에 가까운 지향으로 흐른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즈음 신문 지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컴퓨터 통신망만 구비한 상태에서의 삶의 모색 등이 보여주듯 극도의 폐쇄성은 가족 관계, 교유 관계, 대사회 문제 등등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있지 않은가.

이제 부모, 자식간도 그저 맺어진 채로 흘러 왔으니 느슨하게나마 유지하고 있을 뿐 더 유익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더 즐거운 일은 PC방에서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최근 신문 보도를 통해 몇 년간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눈이 휘둥그래졌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보도를 보고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성장의 속도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솔직히 그 빠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진정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가고 우려가 먼저 되었다.

삶의 귀중한 가치들은 한번 훼손되거나 결락되면 흡사 자연 환경이 그렇듯이 좀처럼 원형을 회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오늘날 변화는 불가피하다.

우리는 세계의 흐름, 시간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하여야 한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삶의 가치들은, 그런 항목들은 지켜 가면서 변화해야 한다.

본말이 전도되어 우리는 너무 목전의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닌가.

나의 사유는 자꾸만 잔가지를 친다.

생각 끝에 나는 "김수영 전집"을 펴든다.

나의 가족 이란 시의 일절을 읽어본다.

"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어느덧 물결과 바람이/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시작한 이 시는 이즈음 우리 삶에 깊은 시사를 주는 명징한 언어로 이어진다.

그것은 식구들이 아침에 눈을 비비고 나가 저녁에 귀가할 때 먼지를 묻혀 피곤해져 돌아오는 하루의 풍경이면서 또 이런 하루 하루가 쌓여 장구한 세월로 이어지는 이치를 담백하게 스케치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시인은 가족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편 자신의 서책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런데 생활이 주는 여러 소음들이 자꾸만 삽입되어 몰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인은 결연히 말한다.

그렇지만 구차한 나의 머리에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을 담아주는 삽시간의 자극을 나의 가족들의 기미 많은 얼굴에 비하여 보아서는 아니될 것 이라고.

그렇다, 시인은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않더라도 유순한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죄없는 말들을 나누는 것이 더 위대한 삶이라고 담대하고 적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돌아갈 곳은 허한 사이버스페이스뿐일 것이고, 이 가상의 공간조차도 제대로 꾸미지 못할 것이리라.

이 점이 중요하다.

낡아서 좋을 것이 우리들의 삶에서 무엇이 있으랴.

오직 하나 사랑이 있을 뿐이다.

아니 사랑은 낡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시인은 저 유명한 "사랑의 변주곡"에서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 끝에/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하며 암흑을 녹이는 사랑의 뜨거움과 사랑의 가열한 소리를 발화한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 빛살처럼 빠른 문명의 변전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줄 것인지 가늠치 못한다.

하지만 어딘가로 데려다 주겠지.

그 세계가 밝고 따뜻한 가운데 사랑이 있는 세계겠지, 막연하게 기원할 뿐이다.

5월이니까 이 맑은 햇살 아래서의 기원은 더욱 간절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가까운 이웃, 또 핏줄을 나눈 이 민족, 공동체가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운데 영속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원, 이 5월에 우리 북녘에 한 핏줄들에게도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도 사랑이 깃들기를...

fox@yolim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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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시인
<>이화여대 정외과 졸업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 "나만의 것"
<>열림원 출판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