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투신 부실책임 논란은 보기에도 답답한 일이다.

정부는 현대측 책임을 전제로 "그룹 대주주들이 사재를 넣어서라도 현대투신의 자본력을 확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나 사재출연을 조건으로 한 정상화 계획이 과연 현실에 부합하고 논리적인지는 의문이다.

산업자본의 제2금융권 지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한때 대주주 1인 지분에 제한을 두는 방안까지 거론했던 정부가 부실을 이유로 대주주의 대규모 출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는지 우선 생각해볼 일이다.

"그룹 체제를 개편해 계열사별 독립 경영체제로 가라"는 것은 정부의 일관된 재벌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출자부담까지 강요한다면 이 역시 종래의 주장과 걸맞다고 하기는 어렵다.

투신 부실의 원인이 대주주와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에만 있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할 사항의 하나다.

현대투신의 경우 대우채 관련 손실이 8천억원에 달하지만 이를 모두 경영 판단상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않다.

대우그룹에 대해 금융지원을 해주라는 정부측 요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대우공사채의 수익률을 실제가치와는 달리 95%까지 높여 지급토록 했던 것도 정부임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같은 측면들을 고려한다면 사재출연을 골자로한 정부의 요구에 반발하는 현대측 입장도 이해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하겠다.

물론 현대투신이 증시호황에 편승해 무리한 외형 확장 전략을 구사했던 것도 상당한 자체적인 부실 요인이었음이 분명한 만큼 현대 측은 이에 대해 진솔하게 해명하고 상응하는 자구조치를 시행하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떻든 우리는 현대와 정부가 서로의 책임을 일정부분 인정하는 선에서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금융대책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투신업계의 불안이 증권시장 전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조기에 결론에 도달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문제는 이번에 수조원의 공적 자금을 3개 투신에 투입한다고 해서 투신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시장의 자금 유출입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투신업계가 별다른 위험 회피수단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가하락과 금리동향에 따라 투자신탁회사들이 언제든 또다시 부실의 늪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정부는 이번 투신정상화 방안과 더불어 다양한 간접투자 상품을 개발하는등 보다 근본적인 증시대책도 함께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