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남서울 컨트리클럽에서 올해 첫 국제 골프대회가 열림으로써 골프시즌이 본격 시작됐다.

외환위기로 지난 2년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주저앉았던 골프 대회수나 상금액수가 올해는 모두 세배로 늘어날 전망이어서 국내 골프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주 풍성한 한 해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외환위기이전 세계에서도 골프용품시장이 가장 급팽창하던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골프용품 시장은 대략 골프채 약 55%,골프공 35%, 그리고 기타 의류나 신발 가방 액세서리 등 10%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은 역시 미국이다.

골프인구 2천5백만명에 1만6천개 안팎의 골프장을 지니고 연간 골프용품 매상고가 5조원에 달한다.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적으로 골프인구가 모두 약 2천5백만명, 골프장수가 4천3백개임을 감안할 때 미국 시장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런 미국 시장에서 골프채 시장의 3분의 1, 골프용품시장 전체의 약 17%를 차지하고 있는 선두주자가 캘러웨이 골프(Callaway Golf Co)다.

골프채 분야에서 2,3,4,5위 네개 경쟁자를 다 합해도 캘러웨이를 따르지 못한다.

지난해 2천5백여명 직원으로 8천5백억원 매출을 기록해 6백4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싯가총액 1조3천6백억원의 회사다.

이 회사는 82년 당시 62세의 엘리 캘러웨이(Ely Callaway)가 설립했다.

캘러웨이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시 에모리대학교를 40년 졸업한후 5년동안 미 육군 병참부대에서 봉직했다.

그 후 당시 세계 최대 섬유직물회사였던 벌링톤에 입사해 고속승진, 48세밖에 안된 나이에 사장 자리에 올라 5년간 최고경영자 역할을 수행했다.

74년부터 81년까지 캘러웨이 포도농장 및 포도주 회사를 설립해 운영했고,이를 팔고 82년에는 캘러웨이 힉코리 스틱 USA(호두나무 막대기라는 뜻)를 차렸으니 이것이 지금의 캘러웨이 골프다.

이 회사는 초기에 호두나무로 채를 만든, 고급 퍼터와 웨지를 만들어 팔았다.

그러다가 88년부터 최첨단 디자인과 최첨단 소재를 채용한 골프채를 만들기 시작하며 고속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91년 연구개발팀이 일본을 방문했다가 그곳 골퍼들이 일반 골프채보다 30%정도 더 큰 우드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큰 사이즈의 드라이버를 내놓은 것이 대히트를 쳤다.

이 과정에서 캘러웨이는 친구요 투자자인 잭 웰치 GE 회장 덕을 톡톡히 봤다.

GE 항공기 제조회사 연구진의 제트엔진 제조기법을 원용해 특수 철 재질로 얇게 헤드를 만듦으로써 부피는 크지만 무게는 가볍고 볼을 칠 때 소리가 경쾌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들 제품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대포, 버사(Bertha)로 명명됐다.

캘러웨이는 그후 매년 1개 이상씩의 신제품을 내놓으며 90년부터 97년사이 연평균 70% 가까운 초고속 성장을 지속해 97년에는 매출액이 거의 1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97~98년 아시아 경제위기로 98년 설립 후 최초로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대대적 원가절감 노력끝에 간신히 흑자로 돌아섰다.

그래도 여전히 97년 기록의 85%에 머물러야 했다.

캘러웨이의 성공비결은 3백년간 무덤덤하게 지내온 골프계에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분위기를 일신한 것과 아시아 사람들의 소득이 증대된 것 등 두가지로 분석된다.

특히 무슨 골프채를 쓰건 지난 20여년간 스코어 증진에는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중에도 사람들이 최첨단 골프채만 찾게끔 골프채를 유행상품화한 것이 적중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항공기 기술을 채택해 골프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이 바로 설립자가 70줄에 들어선 때였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그야말로 70부터였다.

전문위원 shindw@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