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

20세기말 유럽 15개국 지도자들은 유럽연합(EU)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리 하나는 그대로 둔채 다른 한 쪽 다리로만 너무 빨리,큰 걸음을 내디뎠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등이 EU에 추가로 가담하겠다고 나서자 15개국 정상들은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말타까지 포함해 회담을 개최했다.

EU위원회는 이어 7~8개국을 추가로 2000년말까지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유럽지도자들은 이 많은 회원들을 흡수할만한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EU는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15개국 만으로도 이미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회원국이 늘어나면 현제도의 기능마저 마비돼 개혁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EU가 단순한 자유무역지역으로 전락한다면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미국만 이득을 보게 된다.

각국 정상들이 정상회의와 각료들의 동의만으로 EU의 회원국수를 늘리려 한다면 각국의 유권자들과 정상들 자신에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유럽 각국은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경쟁과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극복하고 과거에는 믿기 어려웠던 EU통합을 이뤄냈다.

EU통합은 1950년 슈만계획(유럽의 군사경제통합)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전개됐다.

마스트리히트에서 마지막 위기가 찾아왔을 때(유럽각국은 유로탄생과 관련해 유럽중앙은행이 "의도적 무시"를 해도 되는가와 정치적 지원이 없어야 한다는 대목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제도적인 정비가 돼있지 않았다면 유로탄생은 큰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

유로화가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중앙은행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국의 중앙은행과 통화제도만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면 시장논리에 굴복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비난만 샀을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채 유럽통합을 강행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이 경우 많게는 10배나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서유럽으로 수백만 노동자가 몰려들거나,약소국 기업들이 선진기업과 정면으로 경쟁해야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향후 20~50년간 원활한 통합을 완성하기 위해 다음 세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유럽연합은 자유무역을 포함한 경제 분야에서 통합을 추진하되 정치적 통합은 제한된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둘째,유럽은 공동 방어체제를 확보해야한다.

공동 방어체제는 강한 군사력을 소유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빠르고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조직돼야 한다.

셋째,통합의 최종 목표를 정비해야 한다.

서로 다른 경제력과 정치 문화적 배경을 가진 유럽 30개국을 모두 끌어들이는 것은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통합에 반대하는 나라들을 강제로 끌어들이려 한다면 EU는 붕괴할 것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및 베네룩스는 유럽통합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각국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위원회가 아니라 의회 같은 단결된 조직체가 필요하다.

유럽 각국은 혼자서는 세계 열강의 위협에 대항할만큼 강하지 않다.

이들은 위험에 처할 경우 주변국의 이익을 무시하고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유럽은 새 국제법제정,무기감축,지구온난화,인구억제 등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특히 혼란스런 금융시장을 안정적인 체제로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21세기 후반기에는 미국의 독점적 지위가 약화될 것이며 적어도 두개의 강대국(지역)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유럽은 공통된 외교안보정책을 수행할 만큼 강하지 않다.

이것이 시급히 EU통합을 완성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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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정지영 기자 cool@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