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 영국유학 시절 ]

지금까지 근대화의 필수조건이라 할 각 분야 기능단체 설립을 이야기했다.

기술협력의 전제인 기술보호를 위한 특허협회,또 1973년 유류파동에 대처한 열관리협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제부터 독자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필자와 저명한 학자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훨씬 과거로 돌아가 1958년 12월 필자의 영국 유학시절 추억담이다.

비참한 동족상잔,한국동란의 포화도 1953년 휴전으로 일단 멈췄다.

국민들은 페허 속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나 잘사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지식층이나 학계는 경제부흥과 개발에 관한 참고문헌을 찾으려고 혈안이었다.

한국에서 5.16 초기에 화제의 중심은 로스토우의 "단계적 개발이론(1960)"이었다.

당시 식자들은 로스토우 학설의 키워드인 "도약(Take-off)"를 거론치 않으면 아는 축에 못 들었다.

"도약"이란 국내생산의 5~10% 투자증가율을 이룩,4~5%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단계라고 로스토우는 정의했다.

지금 같아선 형편없는 저투자 저성장이라고 야단들이겠다.

하지만 1950년대말 만해도 연 4~5% 투자율에 2~3% 성장이 고작이었다.

당시 한국사람들은 "Take-off" 단계 도달이 "비원"이었다.

1958년 11월 하순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로스토우 교수의 세미나가 열렸다.

그 해에는 옥스포드대학이 주최했지만 캠브리지 맨체스터 그리고 본인이 다니던 런던 정경대학(LSE)이 공동으로 매년 번갈아 주관하는 세미나였다.

이 세미나는 역사도 오래고 케인즈,로빈슨,히크스,하이에크와 최근의 해로드 등 세계적 석학들이 주제를 발표한 곳이기도 하다.

한달 후면 성탄절이라 조용한 대학촌 옥스포드에도 여기저기 성탄절 장식이 눈에 띄었다.

15년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아직 남은 듯 공기도 무겁고 침울하기까지 했다.

초겨울부터 시작되는 영국 특유의 안개가 우중충한 분위기를 더욱 짓눌렀다.

필자는 단숨에 3층 세미나실로 달려 올라갔다.

건물 한 귀퉁이에 있는 골방을 세미나실로 꾸민 듯 한쪽 끝이 유난히 쑥 들어간 방이었다.

이미 20여명이 와 있었는데 대부분 대학원생같아 보였다.

머리가 천장에 닿을까봐 신경 쓰이는 듯 꾸부정한 채 서 있는 학생도 몇명 있었다.

방안은 절전을 하느라 희미하고 침침했다.

그날 주제 발표자인 로스토 교수는 난방이 없는데 대비한 듯 옷을 몇겹씩 껴입고 있었다.

곧이어 누가 들어오는지 멋대로 서거나 앉아서 속삭이던 참가자들이 자세를 바로잡는 기색이 느껴졌다.

입구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콧날이 오똑하고 눈빛이 유난히도 빛나는 작은 몸집의 여성이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아! 대단한 미인이구나. 지성의 여신은 틀림없이 저렇게 생겼겠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분이 바로 경제학계에서 명성 높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로빈슨 교수였다.

세일러복 스타일의 반코트를 입은 그녀는 맨 앞줄을 차지했다.

필자는 눈치를 안보고 바로 그녀의 뒷좌석에 앉았다.

로스토 교수의 "경제발전 단계론"발표가 시작됐다.

"본인은 지난 9월 학기초부터 이웃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를 가졌고 오늘 발표내용은 이 강의의 요지입니다.

그리고 이 원고는 학기가 끝나는 대로 출판될 것입니다.

책이름은 "경제발전의 제단계:반공산당 선언(The Stages of Economic Growth:A Non-Communist Manifesto,Cambridge,1960)"이고,"反 공산당 선언" 이라는 부제가 붙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론에 들어갔다.

"칼 마르크스는 원시공동체,고대,봉건사회를 거쳐 근대 자본주의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간다고 서술했습니다.

나는 이번 연구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1)전통사회 (2)과도기적 사회 (3)도약단계(The Take-off) (4)성숙단계(The Drive to Maturity) (5)대중소비 단계(The Age of High Mass Consumption)로 혁명이나 독재체제없이 발전해 간다는 것을 미국 및 유럽 선진국사회 분석에서 입증한 것입니다"

[ 김입삼 전 전경련 상임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