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됐지만 가뭄이 심해 농민들의 손과 넋이 갈 데를 몰라하고 있다.

특히 지난주 목요일은 곡우, 즉 못자리에 쓸 볍씨를 담그는 날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비가 절실한 날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자상치 못하니 우리 인간은 마른땅에서도 부쩍부쩍 자라는 벼가 없을까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실로 요즘 농사에 봄비 만큼 중요한 것이 종자선택이다.

유전자 변형 슈퍼 종자들이 많이 나온 덕분에 선택하기에 따라 수확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재배허가가 난 유전자 변형 곡물종자가 40종이 넘는 미국에선 더욱 그러하다.

유전자 변형 종자의 원조는 미국의 제약.화학 및 생명과학 회사인 몬산토(Monsanto Co)다.

3주일전만 해도 3만명 직원으로 연간 매출 11조원, 순이익 5천5백억원을 올리는 싯가총액 38조원의 회사였다.

다만 지난 3일 파마시아&업존사와 합병해 지금은 파마시아(Pharmacia Corp)의 한 사업부로 편입됐다.

82년 세계 최초로 식물 유전자 변형에 성공했고 95년 제초제에 끄떡없는 콩, 그리고 벌레 먹지 않는 감자와 면화의 상용화 허가를 따내 생명공학계 선두주자로 나섰다.

몬산토는 제약회사 근무 30년 경력의 존 프란시스 퀴니가 1901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아내 이름인 올가 멘데스 몬산토중 성(性)을 따 사카린 제조회사를 차리면서 시작됐다.

1917년부터는 아스피린을 생산해 80년대까지 미국 최대 아스피린 제조 회사로 날렸다.

30년대부터 80년대초까지는 각종 화학약품과 플라스틱 제조로 업계 수위를 달렸다.

60년대초 종자사업을 시작했고 80년대중반에는 설탕 대용 감미료,누트라스위트로 유명한 당시 1백년 역사의 설리 제약사를 인수해,단순한 제약공장이 아니라 신약개발능력을 갖춘 본격 제약사로 도약했다.

지난해 1월 발매 시작된 셀레브렉스 두통약은 1년도 안돼 1조6천억원어치가 팔릴 정도로 대 히트를 친 몬산토의 대표적 신약이다.

몬산토는 93년 로버트 샤피로가 사장에 오르면서 급속히 생명과학 회사로 전환됐다.

21세기 식량부족과 농약 및 경작지 확대에 따른 환경파괴가 심각할 것으로 내다본 샤피로 사장은 인류생존과 환경보호에 대한 거의 종교적 사명감에서 유전자 변형 종자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제약업과 농약제조업만 남기고 모두 팔고,대신 96년에 세계 최대 면화종자 회사인 델타&파인랜드, 97년엔 미국 2위 종자회사인 데칼브 지네틱스를 도합 모두 10조원을 들여 인수했다.

그러나 델타&파인랜드가 98년3월 특허를 따낸 터미네이터 종자,즉 한해밖에 수확이 안되는 면화씨에 대해 세계적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99년 5월 경쟁사가 개발한 유전자 변형 콩을 먹고 나비애벌레가 죽었다는 코넬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사운은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99년 벽두부터 여러 농가와 세계적 시민단체, 환경단체, 소비자단체들이 몬산토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신을 지향하던 몬산토는 급기야 몬사탄, 즉 괴물 악마로 불리기 시작했다.

기아와 환경파괴로부터 인류를 구하겠다는 샤피로 사장의 본래 의도와 달리 몬산토는 인간을 괴물로 돌연변이 시키면서까지 돈만 밝히는 악질 독점주의자로 내몰렸다.

거액 기업인수로 그렇지 않아도 부채부담이 과중하던 몬산토는 이로써 주가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결국 지난 3일 파마시아&업존과 합병해 제약사업만 한 데 모으는 한편, 말 많고 탈 많은 종자사업은 현재 분리해 버리고자 하고 있다.

이에 종자사업부는 지난 4일 벼 유전자 구조에 대한 연구결과를 민간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무료 공개하며 분리독립후 생존을 위한 호의적 여론을 조성하느라 애쓰고 있다.

신의 영역을 건드렸다가 치욕속에 1백년 역사의 막을 내린 몬산토 사례에서 신은 과연 인간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은 것일까.

전문위원 shindw@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