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시티에는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지어놓은 예배당이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시스티나 예배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교회의 권위와 교황의 위엄을 누대에 전하고자 했던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오늘날 한 예술가의 탁월한 천재성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되고 있다.

이 천재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영묘를 장식할 조각을 의뢰했던 교황이 이 계획을 취소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만약 교황이 그를 원한다면 몸소 자신을 방문해 심심한 사의를 표명하기 바란다는 편지를 보냈던 바로 그 남자다.

미켈란젤로가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품들을 제작하던 당시 미술가의 사회적 지위는 대장장이 모직업자 피혁제조업자 등과 비슷했다.

그들은 대부분 오늘날의 노동조합과 비슷한 길드 소속의 장인들이었다.

물론 중세의 미술가들과 비교한다면 미켈란젤로 시대의 미술가들이 누린 권한과 자유란 막강한 것이었다.

이익단체인 길드를 조직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들의 지위가 이전의 궁중화가들에 비해 상당히 진전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테면,화가가 되기로 작정한 한 소년이 있다고 하자.그가 제일 먼저 할 일은 그 마을의 우두머리 장인 (master) 에게 보내져 도제수업을 받는 일이다.

그는 스승이 사용할 물감을 개거나 캔버스를 준비한다.

점차 스승이 바쁠 때 그가 완성해놓은 그림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배경을 칠하는 경우도 생긴다.

드디어 그가 스승의 방식을 완전히 모방할 수 있게 되면 스승의 감독하에 그림 전체를 그릴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게 전부다.

스승이 죽은 후 그의 제작소를 물려받아 또 다른 도제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우두머리 장인이 되는 최고의 영예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미켈란젤로가 한 일은 바로 이 관습에 대한 거부였다.

그가 77세 됐을 때 한 이탈리아인이 조각가 미켈란젤로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를 돌려보내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에게 조각가 미켈란젤로 앞으로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해라.왜냐하면 나는 여기서 다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로 통하고 있을 뿐이니까. 나는 제작소를 벌이고 있는 화가나 조각가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비록 내가 교황에게 봉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누구나 감탄해마지 않는 무수한 걸작들의 완성자이지만 무엇보다도 근대적인 예술가의 개성을 확립한 자로서 길이 기억될 필요가 있다.

그에 의해 미술가는 대장장이 수준의 장인이기를 그치고 교황과 맞먹는,아니 그를 능가하는 전지전능한 힘의 소유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이제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는 그들을 예술가라고 불렀다.

선거가 끝났다.

곳곳에서 소위 386세대의 정계진출이 화제다.

"젊은 피"의 승리는 분명 우리 정치의 새로운 변수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들의 제도권 진출을 두고 기성제도에 대한 투항이라거나 과거 학생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과거의 경력이 훈장이 될 수 없듯이 억압이 돼서도 곤란하다.

여전히 비합법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와 무관한 전혀 다른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선택 자체가 비난받아야할 이유는 없다.

직업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 이후의 행로에 대해서는 다르다.

그들이 스스로를 구별짓고자 했던 구정치인들의 행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명분과 도덕성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실무수행능력은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무엇보다도 자신의 직업윤리에 기반한 정치가로서의 자의식의 강도는 얼마나 확고한지,우리는 우리의 평가점수에 따라 그들을 신뢰하거나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그들에게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아니라 다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돼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까.

소속정당의 이해관계를 포함해 제도권 정치의 관행상 어쩔 수 없는 사안이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양심과 정치적 신념에 비추어 거부할 것은 확실히 거부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까.

역사가 그들의 등장과 더불어 정치가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기를 감히 요구해본다.

ssj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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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문학평론가
<>서울대 국문과 졸업
<>경원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