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평양에서 열릴 남북정상회담 생각이 났다.

남북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뭐라고 할까.

호칭은 이미 있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두 사람은 인사치레로라도 서로를 칭송하는 말을 한두마디쯤은 교환하게 되는 것일까.

그러던중에 몇 가지 대목이 떠올랐다.

지난 2월19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모택동에 관한 평가 문제를 기사화했다.

중국의 대표적 사전 "사해"의 99년 신판에서 그에게 그 전까지 따라다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는 표현이 삭제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항의하는 논문이 잡지에 실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원래 이 사전 76년판에서는 마오쩌둥(모택동)을 "위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중국 공산당,중국 각 민족의 영수이며 지도자(도사)"라 기술했던 것이 89년 개정판에선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삭제됐고 이번에 나머지가 모두 삭제됐다는 것이다.

그 대신 "중국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및 중화인민공화국의 주된 창설자 겸 지도자,마오쩌둥 사상의 주된 창립자"로 비교적 객관적 서술만 남았다는 것이다.

보수계 잡지 "중류" 2월호는 마오쩌둥 사후인 1981년 중국 공산당은 정식으로 그를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한 바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 잘못을 수정하라고 나선 것이다.

내게도 마침 1989년판이 있어 마오쩌둥 항목을 찾아 보았다.

2천5백72쪽이나 되는 큰 사전이기는 하지만 마오쩌둥은 초상화와 함께 꼭 반 쪽을 차지하고 있다.

이 항목은 우선 그의 출생과 사망 연월일을 모두 적고,이어 "마르크스=레닌주의자.중국공산당,중국 각 민족의 영수이며 지도자"라는 설명이 시작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 1989년판에는 1979년판과 1989년판 서문이 차례로 붙어있다.

1979년판 서문에서는 원래 "사해"는 1936년 처음 출간됐는데 시간이 지나 점점 쓸모없이 되자 "1957년 마오쩌둥 동지가 이 사전의 새 판을 발의하고 상해에 그 임무를 맡겼다"는 것이다.

준비 도중 문화혁명 등으로 사업이 중단된 것을 1971년 저우언라이(주은래) 동지가 다시 시작하게 했음도 밝혀져 있다.

하지만 1989년판에는 이미 그런 정치가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무적인 사전 편찬 과정만 간단히 서문에 밝혀져 있을 뿐이다.

그 며칠 뒤였던가.

미국 유에스에이 투데이지는 미국 역대 대통령에 대한 역사가 58명의 평가를 기사로 실었다.

클린턴은 41명 가운데 21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1등부터 11등 까지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1링컨(1861~65) 2프랭클린 루스벨트(1933~45) 3워싱턴(1789~97) 4시어도어 루스벨트(1901~9) 5트루먼(1945~53) 6윌슨(1913~21) 7제퍼슨(1801~9) 8케네디(1961~63) 9아이젠하워(1953~61) 0존슨(1963~69) 1레이건(1981~89). 아마 비교적 최근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 방면 전공의 역사가들에게조차 역시 최근 사람들이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 인물 가운데에도 다음 대통령들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 부시(89~93) <> 클린턴(93~현재) <> 카터(77~81) <> 포드(74~77) 등이 그들이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닉슨(69~74)은 25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기사는 트루먼 등 10등 안에 든 사람들이 재임기간 중 나쁜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21등 밖에 안된 클린턴을 위로하고 있다.

또 이 조사는 분야별로 평가를 했는데 클린턴은 경제와 인권 문제에서 5등이지만 도덕성에서 꼴찌(41등)였고 닉슨은 외교에서 8등이었지만 역시 도덕성에서 끝에서 둘째(40등)라고도 지적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후렴 하나...

이 기사에는 "역사가들은 클린턴을 41명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21등으로 평가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독자 여론조사가 있었다.

나는 이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더 낮아야 한다"를 클릭했다.

미국 역사를 잘 모르고 지나치게 도덕적 기준을 높게 치는 내 의견은 소수 의견이려니 생각하면서...

뜻밖에도 결과는 내 의견과 똑같았다.

내가 투표한 시간이 2000년 2월22일 오전 10시5분이었는데,나는 1만1백49명째였다.

1만명 이상의 투표자 가운데 72.4%가 나와 같은 의견이었고 "더 높아야 한다"가 19.5%, "대강 그 정도다"가 8.1%였다.

오는 6월의 만남을 앞두고 남북의 두 사람은 어떤 역사를 생각하고 있을까.

새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은 또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 모두 궁금해지고 싶지 않은가.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