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출신인 백산 안희제(1885~1943)는 임정첩보 36호의 총책으로 임정운영자금의 60%에 달하는 거액을 조달한 항일독립투사다.

근대상인의 면모를 갖춘 민족기업인으로서,또 교육 언론 종교 각 분야에 걸쳐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친 그의 독립투사로서의 특징은 명분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애국운동에 진력했다는 점이다.

양정의숙에서 공부한 백산은 일찍부터 독립운동도 경제문제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1914년 부산에다 자본금 13만원의 백산상회를 차렸다.

곡물 면포 해산물을 판매하는 개인상회다.

1919년에는 백산상회를 자본금 1백만원의 백산무역주식회사로 개편했다.

총주식 2만주중 백산의 몫은 2천5백주였고 나머지는 경주부자 최준을 비롯한 영남굴지의 대지주 1백82명이었다.

백산상회와 백산무역주식회사는 1927년까지 독립운동 연락과 자금공급에 목적을 두고 독립운동의 기지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백산이 "중앙일보"의 사장으로 일본의 총독정치를 맹렬하게 공격했던 것이나 자력사를 조직해 일으킨 협동조합운동은 20년대 후반기를 장식한 민족운동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백산은 30년초 만주로 건너가 발해의 옛 수도인 동경성에 발해농장을 세우고 한국인 소작농 3백여호를 유치해 그들이 자작농이 될수 있도록 하는 한편 발해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에 앞장선다.

그의 관심사였던 협동조합운동을 실현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정신적 지주로 삼았던 것은 단군을 섬기는 대종교였다.

그리고 끝내는 항일종교단체로 지목받고 있던 대종교의 간부 21명이 일경에 체포된 "임오교변"때 9개월동안 투옥됐다가 풀려난지 3시간만에 순국했다.

백산이 직접 남긴 기록은 거의 없다.

백산의 순국 57주기를 맞아 국학연구단체인 한국대종사상연구회가 "백산학 재조명"을 주제로 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문화원에서 강연회를 갖는다는 소식이다.

교육사상등 타분야에 비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백산의 경제.종교사상이 재조명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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