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복 < 조흥은행 행장 ceo@chb.co.kr >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원정중 프리기아라는 나라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 복잡하고 단단하게 묶여진 매듭이 있었는데 "이 매듭을 푸는자 세계의 왕이 되리니"라는 전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

그러나 한 사람도 풀지 못했다.

그 소문을 들은 알렉산더는 단칼에 그 매듭을 절단했다.

그 뒤로부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었다"는 말은 "난해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동의어로 널리 쓰이게 됐다.

남북정상회담의 구체적 일정이 발표되고 나서 온 국민의 기대감이 한껏 고조돼 있다.

정상간의 회합인 만큼 분단이후 얽히고 설킨 수많은 난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 풀듯" 한번에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상당히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쾌도난마식 해결방법은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감이 있다고 본다.

우리의 옛 속담에 "얽힌 실타래는 당기지 마라"는 말이 있다.

억지로 잡아 당길수록 더 꼬이게 된다.

그렇다고 칼로 잘라서도 안된다.

실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얽힌 것을 풀기 위해서는 더욱 더 느슨하게 "풀어 줘야"한다는 옛 어른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서양사람은 싸움을 하기전에 구두끈 조이고 옷깃 바로잡아 긴장감으로 준비한다.

하지만 우리는 웃통을 벗고 몸푼 다음에 싸움에 임한다.

심지어는 신발까지도 벗어 던진다.

상대에 앞서 자신이 먼저 푸는 게 우리 민족의 정서인 것이다.

독일이 통일된 직후 독일을 방문한 우리나라의 고위당국자가 "북한이 동독처럼만 개방적이라면 우리의 통일도 빨라질텐데..."라고 말하자 콜 총리가 점잖게 응수했다고 한다.

"먼저 남한이 서독처럼 문을 여시오"라고 말이다.

천근의 무게처럼 다가오는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상대에게 문을 연다는 것은 반목이나 질시,대립의 근저에 깊숙이 존재하는 구원을 먼저 풀어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는 비단 남북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회적인 매듭,예를 들어 지역감정,종교간 갈등,계층간 대립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넓은 평원에 철선을 쳐놓은 뒤 10년 후 조사해보니 양쪽의 자연계가 현저히 달라졌다고 한다.

새는 물론 웬만한 들짐승도 왕래가 가능한데도 단순해 보이는 경계선 하나로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하물며 반세기에 걸쳐 철저하게 교류가 단절된 남북간의 이질감이야 오죽하랴.

거기에 더하여 서로에게 응어리진 감정이 쌓여 있다고 본다면 일거에 해결하기엔 참으로 어려운 매듭인 셈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이해와 관용으로써 매듭을 풀어가는 지혜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