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을 기록한 지난 17일의 주가폭락 사태는 우리 증시가 얼마나 외부충격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증명해준 사건이었다.

폭락사태의 진원지였던 뉴욕시장은 물론이고 아시아 증시중에서도 가장 높은 하락률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증시가 총선을 전후해 큰 폭의 조정을 이미 거쳤다는 점을 감안할때 그 하락폭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17일 하루에만 40조원이 사라져 국민 1인당 1백만원 가까운 손해를 입은 셈이 됐다.

다행히 폭락 하루만에 뉴욕증시 반등에 힘입어 상승세로 돌아서긴 했으나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것이 시장의 분위기다.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뉴욕시장의 향후 움직임도 아직은 속단하기 이른데다 국내증시의 수급구조에 대한 불안감이 투자자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증시의 수급구조가 악화된 것은 지난해 기업구조 조정과정에서 사상최대의 주식물량이 공급된 데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대우사태를 계기로 투신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대우사태 이후 투신사들은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대거 처분할 수밖에 없었고 어제 증시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투신에 대한 신뢰회복 없이는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가 증시안정을 위해서는 투신사 조기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없이 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총선을 의식해 투신구조조정 및 채권싯가 평가제 도입을 미뤄왔던 터다.

어제 발표된 정부의 증시안정 대책에서도 투신 조기정상화라는 종전의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는 투신의 개방형 뮤추얼 펀드를 허용하고 만기 5년 이상의 분리과세 펀드 판매를 앞당겨 주식수요 기반을 확충한다는 복안이나 투신이 고객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투신에 돈이 새로 흘러 들어가기 보다는 기존 자금의 단순 이동으로 혼란만 부채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투신의 조기 정상화를 추진하지 못하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미 바닥을 드러낸 공적자금을 추가 조성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고 손실분담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투신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투신 정상화는 미루면 미룰수록 비용만 더 들어가게 돼 있다.

이대로 가다간 증시는 증시대로 멍들고 투신업계가 환매사태에 힙쓸려 무더기 도산하는 사태가 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제는 투신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