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황무석이 다방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최형식이 다방에 들어왔다.

"아저씨,늦어서 미안해요"

최형식이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괜찮아" 황무석이 차를 시켰다.

"권 의원이 시낭송할 때 연기가 대단하던데.대종상 감이야.아니 아카데미 연기상 감이야"

황무석이 미소 속에 말했다.

최형식이 빙그시 미소만 지었다.

"권 의원이 혹시 차차기 정도 대권에 마음이 있는 것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요 뭐.정권을 잡으려면 말이에요,숫자가 많은 무산대중을 먼저 잡아야 돼요.

인텔리들은 강한 자 편에 서게 되어 있어요.

워낙 약아빠졌으니까요"

"그건 누구 이론이야?"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도 못한 그가 거창한 이론을 전개하는 게 못 마땅해 황무석이 빈정대듯 물었다.

"히틀러 밑에서 선전상을 한 괴벨스의 주장이에요"

황무석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지껄이다간 최형식으로부터 정치학 강의를 들을 판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황무석에게 최형식이 물었다.

"부탁할 일이 있어"

"무슨 일인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라도 해야지요.

노조가 속썩이나요?"

"아니.그런 부탁이 아니야.돈 많은 사람은 대개 그렇지만 우리 회사 진 회장도 이거하고 문제가 있단 말이야.

황무석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래서요"

"마누라가 외간남자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나봐.진 회장이 나한테 뒷조사를 해 증거를 잡아달라는데 내가 그런 일을 직접 할 수가 있어야지"

"아저씨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세요.

그런 일은 저한테 맡기세요"

너무나 명쾌한 최형식의 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황무석은 이정숙의 인적사항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를 알려주었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다는 얘기와 그 프로그램의 사회자 정동현과 관계가 있다는 소문도 빼놓지 않았다.

"자네 이제 재혼할 때도 됐잖아?"

"제 처가 죽기 전 약속했어요.

재혼하지 않기로요"

"그런 약속은 안 지켜도 돼."

"아니에요.

그 약속은 꼭 지킬 거예요".

최형식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말했다.

세월의 흐름과 역경의 경험과 현실의 냉혹함은 남자에게서 순진함을 앗아가게 마련인데 최형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문득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힘이 아닐까 황무석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뒤편에는 가진 자를 향한 폭발직전의 증오심이 꼭꼭 숨어 있게 마련이고 최형식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최형식과 헤어지기 전 황무석은 극구 사양하는 데도 생활비에 보태쓰라며 1백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이 든 봉투를 그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