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점록 < 병무청장 jloh@mma.go.kr >

인터넷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얼굴없는 "사이버 만남"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PC통신이나 인터넷속에서 펼쳐지는 채팅은 사람의 만남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진실을 가려버릴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지역이나 신분,계층간의 벽을 허물어 생각지도 않은 공간의 사람과 인연을 맺어주는 새로운 매개체로 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 청에서도 사무자동화시스템에 채팅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이 채팅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전화로 대화를 주고 받는 것보다 자신의 속내를 더 솔직하고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글로 대화를 주고 받다보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성을 들이게 되고 때로는 평소에 말로 표현하기 어렵던 우정과 따뜻한 관심표현까지 가능해 직원들 사이의 동료애도 두터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사이버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증폭기능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간부직원들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른 듯하다.

"대화를 신청합니다"하고 얼굴도 모르는 부하 직원이 불쑥 대화방의 문을 두드릴 때는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안면 있는 직원들이라면 몰라도 일면식도 없는 경우 대화방은 좀처럼 두드려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계층과 계통을 통한 단선적인 관계를 미덕으로 여겨온 관료주의 행태가 몸에 깊숙이 배어 있는 탓이다.

때문에 계층을 뛰어넘는 만남에 대해서는 아직도 뭔가 거북하고 어색해 한다.

그러나 위로 향하는 절차와 체계가 까다로운 조직일수록 유연성이 부족하고 그만큼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폴레옹이 워터루 전투에서 패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그 지독한 계통체계 때문이었다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관료들이 한번씩 새겨봄직한 말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상사의 대화방을 노크하고 또 상사는 아무런 거부감없이 그들의 요구에 기꺼이 응대할 수 있는 조직과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자유로운 사고로 창의적인 업무수행의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가는 채팅은 관료주의 문화를 불식하며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적절한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