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인플레논쟁은 선거이후의 정책기조변화 가능성과 관련해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동률이나 경기지수 그리고 산업생산 등의 최근 추이에 따르면 실물경제는 전반적인 호조세에도 불구하고 이미 연초부터 조정되는 양상을 보여 경기과열을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표상의 안정적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여전히 인플레기대심리는 수그러들줄 모르고 있으며 금리위험도 적지않다.

많은 시장참여자들은 선거이전에 늘어난 시장유동성이나 재정부문 지출 등의 인플레적 요인들이 선거이후 소폭이나마 실현될 수밖에 없으며 정책기조도 다소 긴축적으로 선회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인플레에 관한 기존의 여러 분석들은 우리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취약부문을 고려한 정책선택상의 제약요인을 간과한 결과이다.

우리가 인플레를 결정하는 주 요인들을 제대로 식별하고 관리해나간다면 물가안정은 더 이상 위기나 외부요인이 아닌 자체적 구조개혁의 부산물로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현 우리경제의 물가안정추세는 전세계적인 현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금융위기이후 전세계 경제는 본격적인 디플레국면에 진입하였다.

세계적인 정책공조를 통해 가까스로 디플레의 확산을 저지했던 회복과정에서 구조개혁에 따른 생산성 향상 및 비용절감의 효과가 실현되면서 우리경제를 비롯한 선진경제는 모처럼 인플레 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해냈다.

즉 인플레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은 최근의 한계비용이 크게 낮아지고 있는 벤처기업들로 지지되는 신경제의 출현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개방의 진전과 엄청난 위기를 겪으면서 크게 확충되었다.

다만 99년 하반기부터 빠른 경기회복 및 자본시장의 활황세와 더불어 선진경제의 인플레대비 노력이 강화되고 있는 사실은 현 우리경제의 인플레 안전판이 더 이상 외부적 요인보다는 점차 구조개혁의 지속을 통한 생산성 증가와 확대된 자본유출입규모를 무리없이 수용할 수 있는 시장구축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둘째 우리경제는 점차 상호의존적인 세계경제의 발전덕분에 과거의 유가충격과 같은 공급측면의 충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만큼 적어졌다.

이보다는 자유로운 자본유출입과 연관된 자본시장에서의 잠재적 충격요인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플레우려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보다 건실한 금융부문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과 아울러 금융시스템의 붕괴가 자본유출과 환율급등을 통해 직접적 인플레요인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즉 경상거래가 아닌 자본거래와 연관된 충격은 주로 취약한 금융시스템의 운용능력을 수시로 점검하는 특징이 있으나 우리경제는 아직도 취약한 금융부문의 산적한 문제를 강력한 구조개혁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 처지이다.

물론 구조개혁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려면 통화정책의 수행상 여러가지 제약이 불가피하나 이러한 현실적인 정책적 제약들은 시장기능의 활성화를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동시에 내포한다.

따라서 우리경제의 궁극적인 중추시스템인 시장기능의 확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장중심의 구조개혁을 통해 취약부문을 속히 정비해야 한다.

정작 앞으로 인플레 자극은 취약한 금융부문에서 촉발될 소지가 크므로 지금은 효율성이 저하된 정책수단에 의존한 직접적인 긴축강화보다는 동 부문의 건전성 제고를 위한 구조개혁을 통해 추세적 인플레 억제요인인 기술발전을 뒷받침하는 우회적 대응이 적절하다.

결국 우리는 개방으로 인플레의 확산을 억제하는 여러 요인들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나 내부적인 체제의 정비를 소홀히 할 경우 언제든 인플레와 이후의 디플레 우려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봉착해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정부재정적자 축소, 인구노령화 등 지출면에서의 변화와 더불어 인터넷환경에서의 정보활용과 비용절감, 그리고 구조개혁, 규제완화 및 유통혁명으로 인플레 압력의 흡수능력은 지속적으로 확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우리가 주도적 추진해야할 과제는 바로 신경제의 정착을 앞당길 수 있는 금융부문의 구조개혁이다.

구조개혁은 인플레압력의 변화없이 신경제의 주도부문인 벤처기업과 기존기업의 변신을 효과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금융부문의 역할 재정립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필수요건이다.

튼튼한 자본시장과 건실한 은행부문으로 지지되는 신경제의 출현이 본격화될 경우 우리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인플레 퇴치수단을 구비하게 되며 이는 안정화를 위한 단순한 재정이나 금융긴축과 같은 양적조절수단의 비효율성을 재삼 확인시켜줄 것이다.

gpchoi@sun.ki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