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들의 수초치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붕어의 먹이활동이 최고조에 달하는 산란기 전후여서 월척을 노리는 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날씨도 알맞다.

새벽녘은 손이 곱을 정도로 차지만 해가 뜨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만큼 따사롭다.

이번주는 어디로 떠날까.

붕어들이 산란의 고통을 못이겨 입질을 끊고 퍼덕이는 곳이 아니라면 해안가 수로와 중부내륙의 저수지 어느 곳에서든 묵직한 손맛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지난 9일 충북 보은군 삼승면의 석정못.

서울 우정낚시회의 수초치기꾼 4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 낚시회의 춘계대회와 5월9일 열리는 한국민물낚시 왕중왕대회 파견대표 선발을 겸한 자리다.

석정못은 면사무소 토박이 직원들도 잘 모를 정도로 자그마한 평지형 못.

하지만 억세지 않은 수초가 고르게 분포된 숨은 황금지다.

"임란전부터 있던 오래된 못이지요. 씨알 굵은 붕어들이 많아요.
관고기(1관잡이)도 했어요. 재작년엔 팔뚝만한 가물치까지 건졌지 뭡니까"

인근 농가 이보식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싣고온 장비를 푸는 꾼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바지를 추켜입고 좌대로 쓸 미니튜브에 바람을 채우고는 못으로 직행.

최적의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한 발걸음은 새벽요기도 마다한다.

물이 허리춤에 오는 곳에 자리를 잡고 수초부근을 정조준, 지렁이와 새우를 낀 채비를 조심조심 내린다.

새벽녘 물속이라 몸이 얼어붙을 정도지만 꾼들의 표정은 여유만만.

"물속까지 들어가 하는 수초치기는 공격적이에요. 가까이 다가가 큰놈을 낚아채는 즐거움은 다른 어떤 낚시와 비교할 수 없지요"(정명륜 총무)

동틀무렵 입질이 잦아지면서 긴장감이 감돈다.

여기저기서 잽싸게 낚아챈 낚싯대의 초릿대가 부러질듯 휘지만 곧 탄식이 이어진다.

"에이, 잔챙이야 잔챙이"

옆자리 꾼이 빙긋이 웃으며 거드는 한마디가 물에 반사돼 확성기를 대고 하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

"실력들이 늘었나. 물소리는 요란하네"

맹호부대 출신이어서 "맹호"로 불리는 신왕열씨가 찌의 움직임을 보고 중얼거리는 푸념소리도 엇갈린다.

"아예 드리볼을 해라, 드리볼을..."

11시가 가까워지면서 하나 둘씩 못에서 빠져 나온다.

얼마나 큰 놈을 잡았는지 묻는 말에는 모두들 "잔챙이"라며 살림망을 뒤로 감춘다.

저마다 이날 잡은 붕어의 크기를 재고 승자를 가린 뒤에는 원로들을 중심으로 한 왁자한 입담판이 벌어진다.

"올라오다 떨어져 도망간 놈이 40cm는 돼 보이지 뭐야"

"아쉽네, 찌가 움직인다는 말이 내게 하는 것인줄 몰라 놓쳤는데 그놈을 끌어올렸으면 오늘 우승은 내 것인데..."

못주변 청소를 마치고 장비를 추스른 뒤 버스에 올라탄 시간은 오후 1시께.

한 원로회원의 한마디에 일상을 넘어선 낚시꾼만의 초연함이 느껴졌다.

"물고기를 잡는 것만이 낚시는 아니야. 시간을 낚고 사람을 낚고 또 술을 낚는 것도 훌륭한 낚시지"

보은=김재일 기자 kjil@k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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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척도사'' 차승호씨 ]

이날 대회의 주인공은 차승호(38)씨.

참가자중 유일하게 30.6cm 크기의 월척을 낚아 부러움을 샀다.

29.5cm짜리 대어도 기록에 보태 뚝심을 과시했다.

미끼는 대어용 새우가 아닌 지렁이를 썼다.

차씨는 우정낚시회의 신예 "월척도사".

지난달 26일 충남 안면도 대야리수로에 출조했을 때도 최대어(38cm)에 조금 못미치는 36cm짜리 월척을 건져 올리는 등 뛰어난 감각을 자랑하고 있다.

"실력으로 치면 우정낚시회 회원중 꼴찌 수준입니다. 최근들어 운이 많이 따르는 것 같아요"

원로회원들의 칭찬에 금세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차씨는 "묵묵착실형".

낚시를 하는지 세월을 낚는지 모를 무심한 기다림에 익숙해서인지 크지 않은 눈매가 선하다.

하지만 포인트 선정은 물론 남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찌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이다.

차씨가 우정낚시회에 합류한 때는 2년전.

서울에 올라오기 전 대구에서부터 낚시를 즐겨 조력은 10년을 넘는다.

대구에서는 스윙낚시를 주로 했는데 지금은 장화바지를 입고 물속에 들어가 하는 "수초치기"에 빠져 있다.

"스윙낚시가 수동적이라면 수초치기는 공격적이에요. 물속의 붕어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큰놈"을 낚아 채는 재미가 훨씬 좋습니다"

차씨의 바람은 물론 월척행진을 이어가는 것.

모든 조사들의 꿈이기도 하다.

"꿈이라기보다는 욕심이겠지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늘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기다리다 보면 못이룰 것도 없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