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복 < 조흥은행 행장 ceo@chb.co.kr >

"동양은 동양,서양은 서양, 이 둘은 결코 만날 일이 없으리"라고 말했던 이는 J R 키플링이다.

동양은 동양대로,서양은 서양대로 각각 공존하는 게 서로에게 이롭다는 게 당시의 사고방식이었다.

이 둘이 마주치는 곳에는 늘 전쟁의 파열음이 함께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알렉산더의 인도정벌,징기스칸의 유럽침공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통해 그같은 2분법은 의미를 잃게 된다.

이른바 지구촌시대의 서막이 올려진 것이다.

더욱이 국가간의 경쟁이 군사에서 상업으로 옮겨감에 따라 "국제화 세계화 개방화"는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되고 만다.

우리나라의 정부기관 및 모든 기업체에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라는 경영목표가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성 싶다.

너무 경쟁적으로 남발되다 보니 이제는 식상한 느낌마저 들 정도가 되었다.

엄밀하게 봐서 우리나라의 국제화는 최근에 갑자기 대두된 게 아니라고 본다.

삼국시대의 나당연합군,임진왜란때 명나라와의 공조,구한말의 외교상황,6.25전쟁 등은 당시 여건으로 볼 때 국제적관계의 틀에서 벌어진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화"와 다른점은 지구촌 전체의 상황과 직결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한 나라가 국제화되었다 함은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면에서 폐쇄성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지구촌의 흐름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GATT, UR, IMF 등의 물결속에서 우리는 국제화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수많은 연구서 컨설팅 경영기법이 접목됐고, 어느 정도의 가시적 성과도 달성한 것처럼 보였 다.

그러나 국제화수준은 어느새 몇단계 더 올라가 있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국제화는 어느정도 됐으니 세계화를 추진하자고 하여,때아닌 "Segewha"라는 전대미문의 고유명사가 탄생한 우스꽝스런 일도 있었다.

하지만 IMD (국제경영개발원)가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의 국제화부문이 47개 조사대상국가중 최하위권에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우리 모두의 분발을 요구하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마치 영어 매너 협상의 능숙함이 국제화의 전부인양 치부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전세계를 단일공동체로 생각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마땅히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국가"의 구성원보다,"5천년 역사의 단일민족"을 먼저 떠 올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민족의식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다만 민족의 우월성이라는 환상에 도취돼 타민족 타인종에 대해 배타적 감정이 개입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원 운동에 구심력과 원심력이 작용하듯이,국제화가 통합.단일화라는 구심력이라면 국가는 다원.다양화라는 원심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균형을 얼마만큼 슬기롭게 유지해 나가느냐가 국제화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