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버지들은 아들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극복하지 않고 아버지가 된 아들들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들은 아들들의 빛이자 그림자이다.

아버지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답기는 어렵다는 말이나 현실이 부정적일수록 활발해지는 아버지 바로 세우기 운동을 보면 아버지라는 역할이 호재보다는 악재로 작용하기가 쉬운 듯하다.

한국 현대문학 속에서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버지는 종이었다"에서부터 "아버지는 남로당이었다"를 거쳐 "아버지는 군인이었다"와 "아버지는 자본가였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반영하는 아버지들이 문학의 중요한 주제였다.

굴곡 많은 역사를 경험하면서 각기 신분 사상 정치 경제상의 결함을 지닌 아버지들이 자식들의 원죄로 작용했었다.

최근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가시고기"라는 소설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경제관련서를 보니 아버지라는 화두가 여전히 사회의 흐름을 알려주는 풍향계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 풍향계의 바늘을 통해 현재 아버지들의 영광과 상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직도 마음의 아킬레스건이다.

먼저 "가시고기"는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처절한 부정을 강조하고 있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의 골수 이식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암에 걸린 자신의 각막을 팔고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영웅에 가깝다.

지난 90년대에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가부장제의 강화라는 비판을 받았던 "아버지 신드롬"의 연장선상에서 아버지 자체가 하나의 고급 상품이 된 현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아버지들의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높은 금융IQ를 요구한다.

이 책의 논리에 의하면 자신의 각막을 팔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제적 곤란 상태에 빠지기 전에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게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현명한 아버지이다.

마음만 앞서는 가난한 아버지보다는 몸도 따라주는 부자 아버지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난한 아버지는 돈을 좋아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하지만,부자 아버지는 돈이 부족한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또한 가난한 아버지가 "나는 너희들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 부자가 될 수 없단다"라고 말할 때 부자 아버지는 "나는 너희들 때문에 부자가 돼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상반된 아버지상을 통해 저자는 절약보다 투자를,부정적인 냉소보다 긍정적인 도전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는 다소 위험하고 불편한 내용도 들어있다.

돈을 피하는 것이 돈에 얽매이는 것만큼 잘못됐다거나 돈을 안전하게 굴리지 말고 영리하게 굴려야 한다는 지적은 투자보다 투기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은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정복자가 되기 위해 두려움과 욕망,위기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심리학서이자 돈을 통해 삶을 배우게 하는 철학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더 이상 사랑이나 희생만으로 아버지의 자리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난이 나라도 구제하지 못하는 천형이 아니라 인간의 무능력 탓이 됨으로써 가난한 자를 도덕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단 아버지들 뿐만이 아니라 대학생들마저 벤처나 주식 때문에 계급이 달라진다.

연예인들의 가치와 의미는 그들의 소득액이 결정한다.

돈이 신흥 종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상반된 두 아버지상이 동시에 유행일까.

점점 개인화되고 단자화되는 생활 때문에 더 중요해졌지만 더 불가능해진 사랑처럼,그리고 더 자유로워졌지만 덜 안전해진 가족처럼,돈도 벌어오는 아버지와 돈만 벌어오는 아버지 사이의 분열과 갈등이 더 커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아버지처럼 딸의 친구를 넘보는 느끼한 아버지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평범한 소시민의 다른 모습인 것은 아닐까.

90년대의 소설가 김소진은 "아버지는 개흘레꾼이었다"라는 명제를 통해 미워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힘 없고 초라한 아버지와 화해했다.

이제 미래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제조업자였다"라거나 "아버지는 샐러리맨이었다"라는 명제와 싸워 이겨야만 아버지와 화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시 아버지들의 악은 명사가 아닌 동사이다.

슬프고도 두려운 일이다.

penovel@hitel.net

---------------------------------------------------------------

<> 필자 약력

=<>이화여대 국문학 석.박사
<>이화여대 강사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