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그때 웨이트리스가 양주병과 얼음을 가지고 왔다.

진성구가 잔에다 얼음을 넣고 양주를 잔에 반쯤 따랐다.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려다 말고 진성구는 잔을 내려놓고 다른 잔에 얼음을 넣고 양주를 조금 따른 후 이혜정을 보았다.

이혜정이 양주를 더 따르라는 손짓을 했다.

진성구가 다시 조금 더 따른 후 잔을 이혜정 앞에 놓았다.

이혜정이 자기 앞에 놓인 잔을 진성구 앞으로 밀어놓고 진성구 앞에 놓인 잔을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진성구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혜정이 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술이 언제 그렇게 늘었어?"

진성구가 말했다.

"술이 는 게 아니에요.

편견을 가진 사람을 이해시키려면 인내심이 필요해서 그래요"

"편견이라니..김명흰가 뭔가 하는 여자가 어떤 여잔지 설명해줄게.

답답하게 구는 이혜정이라는 여자를 이해시키려면 나도 인내심이 필요해"

진성구는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면서 말했다.

"김명희라는 여자가 얼마 전까지 대해실업의 전속모델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거야.

과거는 어땠는 줄 알아?

처음 은행빌딩 엘리베이터 걸이었던 김명희를 백인홍이라는 자가 데려다 자신의 비서 겸 내연의 여자로 삼았던 거야.

백인홍이 누군지 알아?"

"알고 있어요.

백운직물 사장이지요.

성수씨와 같이 몇 번 만난 적도 있어요.

성수씨와 고향 친구라서요"

"권혁배 의원이라는 똑같이 형편없는 자와 단짝이 되었고,지난 정권에서는 권력자 사촌의 불알을 잡고서 회사를 키워 지금은 큰소리치지만,원래 출신이 형편없는 자야.

그자가 김명희를 비서로 데려오고부터 김명희의 인생은 확 달라졌지.

그 후 김명희가 대해실업의 모델로 선정된 것은 황무석이라는 대해실업의 모사꾼이 백인홍에게 복수하기 위해 김명희를 빼내오기 위한 술수에서 비롯된 것이고..."

진성구는 다시금 분이 솟는지 앞에 놓인 잔에 술을 채워 다시 쭉 들이킨 다음 담배를 불붙여 물고 두어 모금 길게 빨아 "후" 하고 내뱉었다.

"그 다음은 혜정이도 알고 있을 거야"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성호가 자기 회사 모델인 김명희를 좋아했다고요.

그래서 결국 부인과 별거를 하게 되었고요"

"그럼 됐어.성호가 별거를 한 것이 김명희 때문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성호가 김명희를 노리갯감으로 데리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미숙이가 성호 부탁 때문에 김명희를 캐스팅했다는 거예요?"

"그럼 아니라는 말이야?

성호는 김명희를 일류 모델로 성공시킨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우리를 이용해 스타로 만들겠다는 거야.

그게 뭘 의미하는 줄 알아?"

이혜정이 고개를 저었다.

"성호가 우리의 예술활동을 우롱하는 거야.

나로서는 생명과 같은 일을 우롱하는 거야.

그리고 미숙이와 혜정에게도 정말 섭섭해.

성호의 그런 몰염치한 부탁을 들어주었다는 게..."

이혜정이 앞에 놓은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