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감적인 육체임에는 틀림없지.

도대체 누가 추천한 거야?"

진성구가 김명희를 지칭하며 진미숙과 이혜정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추천했는지는 상관없어요.

아주 성실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해요"

"성호가 추천했지?

당장 저 여자를 내보내"

진성구가 소리를 꽥 지르며 뒤돌아서 객석 통로를 걸어나갔다.

그가 김명희를 못 본 체 성급한 걸음걸이로 지나치자 김명희가 몸을 움츠렸다.

이혜정이 무대를 내려와 진성구 뒤를 따르다 김명희 옆에 와서 그녀를 다독거려준 후 코트를 벗어달라고 손짓을 했다.

김명희의 코트를 타이트 무용복 위에 걸친 이혜정이 진성구가 나간 문을 뒤따라 나갔다.

"오빠 나 좀 봐요"

이혜정의 목소리에 식식거리며 걷고 있던 진성구가 뒤돌아보았다.

이혜정이 뛰어오고 있었다.

진성구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차 한잔 하면서 나하고 얘기 좀 해요"

이혜정이 진성구에게 다가와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차 마실 기분이 아니야.

술을 해야겠어.

술에 취하지 않고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아.

오빠 기분은 알겠어요.

그럼 술집으로 가요.

내가 살 테니까요"

진성구는 잠시 머뭇거리다 길 옆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보도 옆으로 난 창가 옆 테이블에 이혜정과 마주하고 앉아 웨이트리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여기 양주 한 병만 가지고 와요"

진성구가 가까이 다가온 웨이트리스에게 말했다.

"국산 양주 작은 병밖에 없는데요,괜찮으세요?"

"좋아요.

얼음도 가지고 와요"

진성구는 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어둠이 찾아오면 서울에서 그래도 그럴듯한 활기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동숭동 거리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의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어정쩡한 활기와는 종류가 다르게 이곳의 활기에는 젊음과 왠지 모를 순진함이 배어 있었다.

예술 창작활동에 전심전력을 한 지 어언 6년,그 기간 동안 자신도 마음의 젊음과 동시에 순진함을 찾았다고 자위했다.

허나 방금 전 일어난 일과 같이 그러한 젊음과 순진함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김명희씨 말인데요.

오빠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혜정이 여전히 창 밖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진성구에게 말했다.

"뭐,오해하고 있다고?

그 여자가 어떤 여잔지 몰라서 그래.

나는 적어도 지난 몇년간, 혜정과 같이 "젊은 대령의 죽음"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그리고 박정희에 관한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만은 얻었다고 확신했어.

첫째는 혜정과 같이 순수한 예술을 창조하고 있다는 성취감이 있었고,두번째는 예술을 창조하는 세계에만은 내가 사업을 하면서 경험한 위선과 추악함이 없었다는 데서 오는 충만감이었어"

"오빠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요.

그러나 오해를 하고 있어요"

이혜정이 안타까운 표정 속에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