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재무구조개선 목적 ]

1968년 11월 주식대중화 및 기업공개를 촉진할 목적으로 "자본시장 육성법"이 제정됐다(한국경제"김입삼회고록" 99년12월20일자 참조).

필자의 독자적인 착안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시행하지도 못한 채 8.3사채동결조치를 맞았다.

기업 소요자금의 80% 이상을 차관 은행차입 고리채 등 외부자금에 의존한 상태에서 언제든 도산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를 예방하고자 가족회사 공개에 의한 자금조달을 의도한 것이다.

민간단체인 전경련에서 추진하고 여론에 밀려 "주식대중화법"을 만들었으나 당시 정부당국자들은 이 법의 취지나 문제의 긴박성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필자는 청와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관련 공무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디어나 제도가 미비해서 국민기업이 실현되지 못된 게 아니다.

확고하고 지속적인 실천력이 부족한 탓이다.

대통령이 말씀하신 국민기업이란 정부,기업주,주주가 될 국민 등 3자가 장기간 합심해야 이뤄질 수 있다.

정부로서는 장관이 바뀌어도 중단없이 추진될 수 있는 제도와 공무원 기풍을 확립해야 한다"

그러면서 일본 통산성 고위관료의 말을 인용해 설명했다.

"통산성은 50년대말부터 60년대까지 20년에 걸쳐 무역자유화와 자본자유화에 대응해 꾸준히 산업경쟁력강화 정책을 지속했다.

일본의 관청은 한국과는 달리 과장중심으로 움직인다.

과장의 임기는 보통 2년 내지 4년이다.

취임초 내부 토의를 걸쳐 업무추진 원칙을"지속할 사업"과 "새로 시작할 사업"으로 나눈다.

그러니 관청일은 큰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완성될 때까지 중단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우리 실태는 어떤가.

누군가 장관이 되면 제 색깔을 내려고 온통 바꾸는 것이 통례다.

사람마저 번번히 바뀐다.

또 철저하지 못하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

이래선 근대국가를 이룩하기 어렵다.

필자는 그런점을 지금도 우려하고 있다.

68년에 만든 법은 주식공개에 대한 세제상 특전을 주었을 뿐 강제성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법을 보다 강화시켜 강제성을 띠게 하자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됐다.

이렇게 해서 제정된 것이"기업공개촉진법"(1973.1.5)이다.

이 법의 성안은 주무부처처인 재무부가 주로 했다.

법의 취지는 이렇게 쓰여졌다.

"기업공개를 통해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을 주목적으로 한다"

국민의 기업참여로 국민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전경련의 건의에 따라 1968년 제정된 "주식대중화-자본시장육성법"과 입법취지를 같이한다"고 김정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도 그의 회고록에서 지적했다(김정렴 회고록 279쪽 참조).

다만 세제상 혜택으로 공개를 유도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공개대상 법인 선정과 공개를 명령할 수 있는 강제조항을 뒀다.

또 불이행땐 세법상 불이익과 금융지원제한 등 무거운 규제조항도 덧붙였다.

68년에는 필자가 처음 제안한 "종업원 지주제"를"우리사주조합"으로 개칭해 8.3조치의 혜택을 종업원에까지 넓히는데 신경썼다.

박 대통령도 우리사주조합 취지에 적극 찬성하고 공장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유의 노사협조 및 노사평화의 양대지주로 삼으려고 했다.

필자는 이에 한술 더 떠 남북대치 상태에서 주식대중화와 가족회사의 공개로 국민과 자유경제체제와의 유기적 연결을 굳게하자는 의미도 부여했다.

말하자면 체제경쟁에서 "People"s Capitalism"의 실현과 승리를 궁극 목표로 삼았다.

8.3조치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필자로서 한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무슨 이유로 김용완 전경련 회장의 제안을 받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발동했을까.

다른 사람이 같은 제안을 해도 중대결정을 단행할 만큼 설득력이 있었을까"

이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관찰이다.

당시 경제사정이 위기일보 직전에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김용완 회장이 지니는 절대적인 신뢰성이 없었던들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대권 발동에 주저했을 지도 모른다.

김용완 회장은 속된 의미에서 "강한 지도자"의 성품은 못지닌 분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8.3조치 당시의 김 회장을 회상하면서 "난세의 지도자란 무엇보다 신뢰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경방 중역으로 이 공장부지 매각에 관여했던 김각중 현 전경련 회장의 후일담이다.

< 전 전경련 상임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