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버릇이죠. 남이 버린 물건만 보면 주워 모으고 싶으니"

"아가씨"란 브랜드로 유명한 디자이너 이경원씨는 남들이 쓰다 버린 물건들을 모아 패션 소품을 만드는게 취미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인사하는 마론인형, 물고기 모양 핸드백, 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든 탁자 등 평범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씨는 뉴웨이브 인 서울(New Wave in Seoul) 등 국내 패션쇼뿐 아니라 오사카 패션 페스티발, 파리 프레타포르테(Pret a Porter) 등 해외무대에서도 역량을 인정받은 "니트 디자이너".

그는 자신이 만들어 패션쇼에서 사용한 소품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모양과 재료도 독특하지만 소품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 또한 특이하다.

"인사하는 마론인형은 청계천 시장을 뒤지다시피해서 겨우 구한거예요. 원래는 한복을 입고 있던 인형인데 제가 만든 옷을 입혔죠"

이렇게 만든 인형을 서울에서 "아가씨" 매장을 열 때 입구에 전시했더니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며 웃는다.

"물고기 모양의 핸드백은 "가상공간"을 주제로 한 패션쇼에서 사용한거예요.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만들었죠"

나무로 만든 하이힐에 관한 얘기도 재미있다.

"이 구두를 사용한 패션쇼가 참 독특했어요. 패션쇼 주제가 "탈 젠더(gender)"였는데 남자 모델에게 전부 이 구두를 신겼어요. 관객들이 좋아하더군요"

이렇게 취미로 만드는 소품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언제나 "재미난" 생각만 하고 사는건 아니다.

우리나라 패션계의 유통구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진다.

"한국은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하면서 먹고 살기엔 힘든 나라입니다. 의류업계의 유통구조가 아직 선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죠"

디자인만 생각하면서 살기에도 바쁜 사람들에게 사업까지 잘하도록 부담을 지운다는 얘기다.

이씨는 이번에 가족들과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옷만 생각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 위해서다.

"남아공여행은 처음입니다. 다녀와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할텐데 걱정이 되네요"

오랜만에 갖는 휴식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걱정 때문에 마음을
못놓는 여자. 정말 "어쩔 수 없는" 디자이너란 생각이 들었다.

송종현 기자 scream@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