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무 < 공정거래위원회 단체과장 >

지난 3월6일자 한국경제신문 8면에 게재된 아주대 이성락교수의 의사단체 집회관련 기고문을 읽고 그 사건을 맡았던 실무자로서 정확한 사실내용과 판단의 취지에 관해 몇 가지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독자들이 양쪽 당사자의 의견을 모두 정확히 듣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번 사건의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 중의 하나인 의사들이 집단행위를 하고 이와 관련하여 공정거래법이 적용된 점에 대해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이성락 교수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성락 교수는 지난 2월17일 여의도에서 개최됐던 의사단체의 집회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 이유는 민주국가에서 집회 및 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정당하고 중요한 기본권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의사들이 적법하게 집회 및 시위한 것을 가지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해 문제삼는 것은 행정부의 월권행위요 권력남용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이를 위해서 법이 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철저히 존중되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관계되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은 다양할 수 있으며 이를 다각도로 수렴,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를 인정하면서 이성락 교수가 제시한 문제와 관련, 몇 가지 점을 밝힌다.

첫째,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의사단체에 대하여 시정조치하게 된 것은 그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집회 및 시위를 한 행위 자체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민주국가에서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철저히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사항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대상도 아니다.

둘째, 그렇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왜 시정조치를 하였는가?

그 이유는 사업자단체인 의사협회가 그 회원 사업자인 의사들의 사업활동에 개입해서 의사들로 하여금 평일에 휴진 또는 휴업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약칭하여"공정거래법"이라고 불리는"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기본 목적중 하나는 사업자들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정거래법은 사업자의 불공정행위,담합행위 및 독점적 지위의 남용행위 등 자유로운 경쟁 및 사업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행태 및 구조를 규제하고 있다.

그 규제대상행위중의 중요한 하나가 바로 사업자단체에 의한 경쟁제한행위이다.

공정거래법 제26조에서는 사업자단체가 그 구성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어떤 단체의 회원이라고 하더라도 그 단체로부터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자신의 사업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쟁이 촉진되고 소비자의 이익이 증진되기 때문이다.

사업자단체란 동업자들이 구성한 단체이다.

개개 사업자의 힘으로는 사업과 관련된 정보수집이라든지 대정부 건의 등을 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집단을 구성해서 힘을 모으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자단체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회원인 사업자들에 대해 필연적으로 우월적인 지위에 있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업자가 동업자단체에 가입하지 못하면 그 사업자는 속된 말로 "왕따"를 당하고 사업에 필요한 정보도 얻을 수 없는 등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회원인 사업자는 사업자단체의 규칙과 단체가 결정한 사항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게 된다.

특히 그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법률에 의하여 강제되어 있어서 가입 탈퇴가 자유롭지 못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는 현행 의료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의사협회에 가입하도록 규정돼 있다.

임의 탈퇴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한 의사협회가 평일에 대규모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그 회원들에게 병원 문을 닫고 여의도로 나오도록 동원한 것이다.

의사협회의 집행부는 여의도 집회에 불참하는 의사들에 대해서는 불참사유서를 징구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진료를 할지 아니면 휴업을 할지는 개개 의사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며,단체가 이를 강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종용해서도 안된다는 점에서 볼 때 의사협회의 위와 같은 행위는 회원의 자유로운 사업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집회 당일인 2월17일에는 전국 80%에 달하는 동네병원들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소비자인 일반 국민들은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의사협회의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에 따라 시정조치를 하게 된 것이다.

셋째,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이번 조치는 법률에 의해 정당하게 이뤄진 것이며 자유로운 경쟁과 소비자보호를 위해 공정거래법의 기본 취지에 매우 충실한 조치였다.

월권도 아니요, 권력의 남용은 더더욱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사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한편 국민들이 정당한 진료를 받을 권리를 지켜 주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대망의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시점이면서 우리 경제가 IMF 사태라는 미증유의 어려움을 이제 막 빠져 나온 시점이다.

가끔 병원을 찾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사들이 "집단행동"이라는 수단을 택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를 포함한 국민 대다수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