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맨해튼 미드타운의 번햄증권 본점 소회의실에서는 한 벤처 기업의 사모채설명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솔루션 업체인 C사가 설비 확장 등에 소요될 2천만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1차로 1천5백만달러 어치는 인수자가 이미 결정됐고, 나머지 금액에 대한 인수 희망자 7명만이 참여한 "미니 IR(기업 설명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회의장 분위기는 시종일관 달아올랐다.

월가의 벤처 캐피털회사 펀드 담당자인 참석자들은 C사에 대한 투자가 "대박"으로 연결되지나 않을까 잔뜩 기대에 부푼채 각종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C사는 텍사스주의 댈라스에 본사를 둔, 설립된 지 2년도 안된 종업원 72명 규모의 신생 업체였다.

하지만 여러모로 흥미를 돋구는 내용을 담은 회사이기도 했다.

우선 이 회사는 출신지가 인터넷 비즈니스의 본류에서 한참 떨어진 텍사스일 뿐 아니라, 사장 이하 임직원 대부분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 대학 출신들이었다.

더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 회사의 창업자 겸 사장이 불과 5년 전까지 국내 모 전자회사 미국 법인의 일개 현지 채용인에 불과했다는 대목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근 5년간 그 회사의 미국 남서부 지역 판매본부 세일즈 요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미국 사회에서 "1류"와는 거리가 있는 삶의 궤적을 그려온 셈이다.

하지만 인터넷 혁명의 바람이 불면서 기존의 모든 "질서"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학력이나 간판이 보잘 것 없어도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꽃피울 마케팅 등의 사업 수완만 있으면 누구나 월가 주류 사회의 한 복판으로 도약할 수 있음을 그는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의 기업인들은 "인터넷 혁명"의 이런 본질을 올바로 꿰뚫고 있는가.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이날 IR가 끝난 뒤 함께 참석한 월가 친구가 기자에게 던진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핵심적인 관건은 투자자 등 광범위한 휴먼 네트워크의 구축과 이를 바탕으로 한 마케팅 능력이다.

상품 기술은 부차적인 요소다.

그런데도 나와 접촉하는 한국 기업인들은 대부분 "우리 회사의 소프트웨어 제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보다 성능이 더 정교하다"는 식의 말부터 늘어놓는다.

" 인터넷 혁명기의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제품 성능이나 기술력 같은 "간판" 뿐이 아니라, 그것을 꿰어 구슬로 만들 수 있는 마케팅 파워라는 명제는 곰곰이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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