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서울대교수 국제지역원장>

대우자동차의 매각을 두고 국내파와 해외파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파는 대우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돼야 국내 자동차산업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발휘해 자생력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하고,해외파는 대우차가 제너럴 모터스,또는 다른 해외 자동차 제조업체에 매각돼야 한국 자동차산업의 기술과 경영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진정한 국제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내파는 대우차를 해외업체에 맡기면 아직 국제수준의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한국 자동차산업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는 반면 해외파는 대우차를 현대차에 맡기는 순간 한국 자동차업계는 독점과 국내시장 보호 속에서 국제경쟁력과 담쌓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자동차업계 종사자는 주로 국내파,학계나 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주로 해외파로 나뉘는 듯 하다.

그러면 국가 전체를 위해서,그리고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대안은 무엇인가.

대우차의 처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기준은 산업의 구조적 특징이다.

자동차산업은 자본집약적 산업의 대명사라 할 정도로 막대한 초기 자본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 까닭에 20년 전까지만 해도 자본집약적 산업은 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선진국이,노동집약적 산업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싼 개도국이나 후진국이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와 세계금융시장이 급성장하면서,한 나라가 10억달러의 차관을 얻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그리하여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비롯 최근에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개도국 정부들은 대규모 차관을 들여와 자동차 및 전자 반도체 석유화학 등의 자본집약적 산업에 대형 투자를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의 자본집약적 산업에 선진국 개도국 후진국이 함께 진출해 초과공급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초과공급에 놓여 있는 자본집약적 산업의 특징은 치열한 가격경쟁이다.

자본집약적 산업의 경우 이미 벌여놓은 시설 때문에 기존 경쟁자가 사업을 포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이와 동시에 총비용에서 인건비와 같은 변동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더라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치열한 가격경쟁 속에서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돼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물론,경쟁력이 있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이익을 내지 못한다.

즉 초과공급이 일어나는 자본집약적 산업에서는 경쟁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들이 적자를 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최근 포드가 볼보를,르노가 닛산을 인수하고,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가 합병하는 등 대기업 간의 흡수합병을 통해 전체 생산능력을 줄이는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국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기업이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퇴출시켜 생산규모를 적정수준으로 줄여야 비로소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와 같이 자동차산업이 가지고 있는 자본집약적 산업으로서의 구조적 특징을 볼때 국내 생산규모를 축소할 수 있는 주체가 대우차를 인수해야 자동차 수급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고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 자동차산업의 구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이다.

즉 한국정부가 앞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직.간접적인 보호나 규제를 일절 없애고 국내 시장을 해외 다국적 기업들에 활짝 공개하고자 한다면 이미 제시한 바와 같이 현대로 하여금 대우차를 인수해 국제경쟁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정부가 자동차산업 보호차원에서 해외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에 대한 직.간접 규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면 대우차는 해외기업에 인수시켜 국내시장에서 현대차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하는 편이 더 낫다.

여기에서 한국자동차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나온다.

1안은 정부가 국내시장을 완전 개방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현대차가 대우차를 인수하는 것이다.

2안은 정부가 자동차시장에 대한 완전 개방을 일부 수정하거나 개방일정을 연기하면서 대우차를 해외기업에 매각하는 것이다.

1안은 국내시장의 완전개방이 가져올 불안감 때문에 좀처럼 실현하기 어렵다.

2안은 한국자동차 산업이 가지고 있는 초과공급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

정부는 자동차산업에 대한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하기 바란다.

cho@ip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