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이루어진 굵직굵직한 고고학적 발굴들은 우연에 의한 것들이 많다.

예를들어 세계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진시황의 병마용갱은 촌민들이 샘을 파다가 지하 4m에서 도편들이 쏟아져 나오자 8세기 중반 "안록산의난"때 묻어 둔 금은보화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계속 파들어간 결과 발견된 것이다.

3개의 굴로 돼 있는 병마용갱에서는 평균신장이 1백80cm나 되는 흙으로 구워만든 7천개의 정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시황때 도읍을 경비한던 경사둔위대의 보병부대 전차부대 지휘부등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7천여명의 무장한 모습이나 표정하나하나가 모두 다른것을 보고 중국인은 물론 세계각국 사람들이 거의 알려지지않았던 진나라 문화수준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진시황릉 인근의 이 병마용갱은 진나라를 되살려 놓는 역할을 한 셈이다.

사서에는 어느곳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 갱은 74년에 발견됐지민 5년뒤인 79년에야 발굴을 끝내고 공개됐다.

중국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문화유적이 많다.

파보면 대단한 유물이 나올것을 예상은 하면서도 성급하게 발굴하지는 않는다.

물론 재정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무리한 발굴은 가급적 피하고 잘 보존해 후세에 맡긴다는 것이 중국의 일관된 방침이다.

중국의 초청을 받은 독일 고고학자들이 최근 시안(서안)동쪽 약 1백km 떨어진 곳에서 X-레이 컴퓨터등 최첨단기기를 이용 진시황의 왕궁을 발견했다고 독일신문 "프랑크푸르터 룬트차우"가 보도해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하 4m에서 진시황통치시대(BC250~BC21)의 성곽 광장 복조, 벽돌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1천5백여년전의 백제유적인 풍납통성과 4m지하에서 한성백제의 유물리 출토되고 성내의 건물 일부까지 나와 확대발굴과 보조대책을 놓고 부심하고 있다.

그곳이 도읍지 위례성이라는 성급한 주장도 나왔다.

개발로 이미 대부분 훼손돼 버린 유적복원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학자들의 상상력만 자극시켜 학설같지 않은 소설만 난무하게 만든다.

기록도 있고 토성까지 남아있는데도 일대를 마구 개발한 우리에 비하면 개발을 늦추고 외국학자까지 동원해 땅속을 투시하고 문화재를 찾아내는 중국인들의 느긋함이 부럽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