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사외이사 임기를 정부방침대로 현행 3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대신 대부분의 사외이사들을 재신임 하기로 내부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금융업에서는 임직원의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다.

외환위기로 국내외 신인도가 크게 떨어진 국내은행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2년전 야심적으로 도입된 사외이사제도가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은행경영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사외이사들도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금융감독당국의 입장은 당연하다.

게다가 상당수의 사외이사들이 은행경영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 "거수기" 노릇만 하며 경영감시 역할보다는 정부나 은행장의 방침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홍보이사"로 전락하는 등 그동안의 부작용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영부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은행장을 비롯한 집행간부들에게 있는데도 사외이사들의 임기만 1년으로 단축하는 것은 부당하며,가뜩이나 부족한 전문성이나 직무의 연속성을 개선하는데도 도움이 안된다는 사외이사쪽의 항변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관치금융을 막는 동시에 투명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따라서 사외이사 임기를 1년으로 단축하되 올해는 대부분의 사외이사들을 재신임한다는 절충안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은행들의 딱한 처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금융환경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

밖에서는 금융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선진국 은행들의 초대형 합병이 잇달으고 있고 안으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금융구조조정 과제가 적지 않은데 64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벌써 바닥난 형편이다.

지난 1월말 현재 공적자금 회수율은 23.8%에 불과하며 은행주가 폭락으로 정부가 입은 출자손실만 4조원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내년 3월 예금자보호 한도가 축소되면 상당수 은행들이 또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긴급상황에서 사외이사들을 현장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경영인 위주로 바꾸고 업적평가를 엄격하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은행경영개선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정부건 민간이건 대주주가 은행경영에 최종책임을 지고 은행장을 직접 뽑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국민은행장 선임문제를 놓고 소모적 신경전을 벌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