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만큼 아직 체계화 되지 못한 학문도 없다.

툭하면 5천년 역사를 내세우지만 국사학계에서는 아직 고구려 신라 백제의 정립시기조차 4세기 중엽으로 보고 있다.

언제 삼국이 시작됐는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문헌사학자들은 삼국정립이전의 시대를 "삼한시대" "성읍국가시대" "원삼국시대"등 개념조차 불문명한 용어를 빌려다 쓰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삼국정립시대가 4세기 중엽으로까지 늦추어진 까닭은 "삼국사기"백제초기 기록이 문헌사학자들의 많은 의혹을 사고있는 탓이다.

초기 백제 왕위계승이 부자상속으로만 일관돼 있고 재위기간이 70~80년이나 되며 수명도 1백년이 넘는 왕이 많아 도저히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4세기 중엽 근초고왕때에야 비로소 백제가 중앙집권국가로 인정을 받는 꼴이다.

첫 도읍지였던 하남 위례성의 위치도 주장만 많을 뿐 분명치 않다.

하지만 88년을 전후해 석촌동 고분군,몽촌토성,풍납토성이 발굴되고 그곳에서 한성백제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과거 문헌사학자들의 주장은 빛을 잃어가고 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지금은 위례성의 위치도 "한강 남쪽부근"으로 거의 굳혀졌다.

한때 4세기 전후 백제 지배층과 관련된 유물이 다량 출토된 몽촌토성이 위례성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규모 건물터와 "대부"라는 관직 명문이 있는 토기조각,방위시설,성밖의 해자등이 발굴된 풍납토성이 위례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화재청의 탄소연대측정결과 이들 유물이 BC2세기~AD2세기 것임도 9일 확인됐다.

풍납토성이 고대국가의 역사를 수백년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귀중한 유적지임에는 틀림없지만 대부분 주거지인 유적의 보존이 쉽지
만은 않을 듯해 걱정이다.

이유적이 또다시 훼손돼 역사속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일단 이 일대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몇십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발굴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고학자들의 일방적 기세에 밀려 성급히 "위례성"으로 규정해 버리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