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유가의 움직임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이 보기에 딱할 지경이다.

엊그제 미국 서부텍사스산 중질유의 가격이 배럴당 34달러를 넘어서는 급등세를 보이자 깜짝 놀란 정부는 관계부처간 긴급 회의를 갖고 앞으로 원유가 상승분을 그대로 국내 유가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휘발유 등 석유류 제품은 물론 전기요금까지 오른다고 크게 보도됐다.

그러나 불과 몇시간도 안 돼 정부는 "원유가가 올라도 국내 유가는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1백80도 돌아섰다.

전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 뉴스에서 전혀 상반된 정부의 방침을 전해들은 국민들이 얼마나 헷갈렸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부의 정책은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또 사람마다 생각과 처지가 다르고 상황 역시 천차만별이므로 만인으로부터 잘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정책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재경원 차관이 주재한 공식 회의 이후의 정부 정책이 수시간만에 뒤바뀐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부가 당황하는 모습으로 비친 것은 오히려 사소한 일이고 정부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점이 더욱 큰 문제라고 하겠다.

정부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물론 4.13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입김에 흔들린 결과라는 추측이 나도는 것도 당연하다.

원유가의 상승세는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지난 해 이맘때 배럴당 10달러 수준에서 꾸준히 오르기 시작해 최근 3배 이상인 3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날벼락처럼 닥친 과거 두차례의 석유파동 때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상황별 시나리오를 마련할 여유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우왕좌왕한 정부의 태도는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기본적인 판단 자체가 이렇듯 오락가락 했다는 점에서 원유가의 상승세 반전 이후 1년여 동안 무얼 했는지 도대체 궁금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황급히 뒤바꾼 정책이 앞서의 것보다 낫다고 하기도 어렵다.

물론 물가안정을 위해 막대한 세수결손을 감수하면서까지 탄력세율을 더 내려 국내 유가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정책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와 에너지 낭비풍조를 조장한 과거의 저에너지 가격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이 더 설득력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유가의 상승분을 국내 유가에 그대로 반영함으로써 절약을 유도하겠다는 당초의 정책은 "입에는 써도 몸에는 좋은" 양약의 효험을 지녔기 때문이다.

정부는 석유파동 이후 30여년이 다 되는데도 어째서 우리의 비효율적 에너지 소비구조와 행태는 당시보다 나아진 것이 거의 없는지 진지하게 돌이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