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가 실직자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실업급여를 받아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고 창업이나 재취업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남 양산에서 도배인테리어 점포를 운영하는 김형곤(35)씨.

지금은 어엿한 "사장님"이지만 그도 한때는 이력서를 들고 이 직장 저
직장을 헤매던 실직자였다.

대우건설 관리직 사원으로 일하던 김씨는 "IMF 경제 위기"의 한파가 한창
이던 지난 98년 3월 실직자 신세로 전락했다.

회사측은 김씨에게 6개월 임시계약직과 연수원 교육(대기발령)중 하나를
고르라고 통보해 왔다.

급여가 절반 정도 삭감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중졸 학력에 조선소 근로자 출신인 김씨는 어렵게 구한 직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아내 정선자(35)씨와 함께 지방노동관서에 구직등록했지만 재취업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여기 저기 이력서와 지원서를 들고 찾아갔지만 일자리를 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살길이 막막한 그에게 실업급여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전 직장에서 받던 보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김씨는 석달동안 매달 90만원
가량을 받아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실직자를 위한 무료 재취업 교육훈련과정에도 등록, 수당을 받으며 도배
기능을 익혔다.

재취업 훈련을 받는 동안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두달간 연장돼 큰 도움이
됐다.

김씨는 도배기능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지원금 3천만원을
받아 창업에 성공했다.

양산에 있는 한 아파트 상가안에 7.3평짜리 점포를 분양받아 지난해 2월
15일 개업했다.

서인천고용안정센터에서 직업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는 허영(31.인천시
부평구)씨에게도 실업급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새 직장을 갖게 해줬기 때문이다.

허씨는 직장을 여러번 옮겨 다녔다.

학교를 졸업한 뒤 인천시 새마을금고연합회 직원으로 일하다가 그만 두고
제과회사 영업사원으로 옮겼다.

IMF 여파로 임금이 체불되고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그는 조그만 볼트
제작업체에 다시 취직했다.

허씨는 전에 다니던 제과회사에서 알게된 아내와 결혼, 신혼여행을 다녀
온지 1주일만인 98년 4월말 실업자가 됐다.

거래처의 도산 등으로 볼트회사도 어려움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마저 다니던 제과회사의 부도로 실직자가 됐다.

부부가 함께 실직한 상태에서도 살림을 꾸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실업급여
덕분이었다.

허씨는 98년 7월부터 두달간 매달 48만원 가량의 실업급여를 받고 추가로
두달간 지급기간을 연장받았다.

아내도 두달동안 38만7천원씩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둘이서 실업급여를 받으니까 여유롭진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허씨는 아내가 우연히 노동부 직업상담원 모집공고를 보고 자신 몰래
지원서를 접수시킨 덕분에 상담원으로 채용될 수 있었다.

결국 허씨는 10개월간의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 지난해 2월 직업상담원으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 이건호 기자 leek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