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 시대] (5) 제1부 : 1997년 가을 <1> '폭풍전야'
황무석이 진성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골프장 사업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보다 콘도미니엄
사업과 같이 생각해야 되리라 봐요.
골프장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콘도미니엄 회원권도 팔기 힘듭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되었지?"
박 사장이 끼여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샐러리맨들도 가족들 데리고 콘도에 들어 골프를 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야."
황무석이 그의 말을 받았다.
"지금 한국 세태가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우리 나라 기업 과장급의
소비행태나 주거환경이 일본 기업의 부장급과 맞먹는다고 해요.
지금 젊은 애들한테 수출업무가 급해 주말에 일하면 오버타임 수당을
준대도 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말에는 무조건 가족 데리고 차 몰고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미쳤어요, 다 미쳤어요.
이러다간 우리 다 망하게 되었어요."
진성호는 손으로 탁자를 꽝 하고 치며 소리쳤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남자 비서가 들어와 진성호에게 메모를 전했다.
메모에는 "이정숙 교수님 내전 긴급 통화 요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진성호는 상을 찡그렸다.
"나 좀 급한 전화를 하고 올 테니까 그냥 회의 계속하세요."
진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먼저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 진성호는 두 달 전부터 별거중인 아내 이정숙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하려고 급히 전화 통화를 원하는지 궁금했다.
다행히 결혼 생활 9년 동안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뒷조사를 한 결과
텔레비전 토크쇼에 의상 전문가로 뻔질나게 출연하면서 만난 토크쇼 사회자와
관계가 있는 것도 알고 있는데, 위자료로 살고 있던 아파트와 따로 원하면
5억 준다고 했으면 두말 말고 감지덕지 받아들여야 마땅할 처사였다.
또 무슨 엉뚱한 제안을 해올지 의아했다.
아무래도 아내의 아버지인 이인환 교수가 법 전공이라 뒤에서 아내를
사주하는 것 같아, 언젠가는 이 교수와 직접 한번 부닥쳐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화장실을 나와 회장실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진성호가 수화기에 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좀 친절하게 대할 수 없어요?"
"용건만 빨리 얘기해.
지금 중요한 회의중이야"
"좋아요.
위자료 조건을 말하겠어요.
조건은 한 가지뿐이에요.
아주 간단해요.
당신 소유로 되어 있는 대해실업의 주식 9퍼센트 중 그 절반인 4.5퍼센트를
내놓으세요."
"이런 미친년이 있나!"
진성호는 아연실색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1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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