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고바이오메디칼의 김서곤(60) 회장.

그는 의료용구 업계에선 "애국자"로 통한다.

지금까지 국산화가 안 된 의료용구만을 고집스레 개발해온 이력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미 국산화된 제품은 절대 안 만든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실제 솔고바이오메디칼에서 만들어 팔고 있는 1천여 가지의 의료용구는
김 회장이 1974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모두 직접 개발한 것들이다.

그런 만큼 현재 연간 매출 2백억원대의 회사를 일구기까지 그의 경영행로는
가시밭길이었다.

성균관대 법대를 다닌 김 회장이 의료용구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0년 천우의료기상사란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이때 영업부장으로 수술가위 핀셋 등 외과 수술기구를 받아다가 병원과
의원들에 팔았다.

당시엔 의료용구를 그저 팔기만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회장은 우연히 종로 뒷골목의 헌책방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에 관한 외국서적을 접하고 인생항로를 바꿨다.

"이렇게 다양한 소재로 수술용 가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 아예 내가
만들어 팔자"

이때부터 그는 직원 한명을 고용해 스테인리스 스틸을 쇠톱으로 자르고
갈아 핀셋을 만들기 시작했다.

의외로 의사들의 반응이 좋았다.

내친 김에 솔고산업사라는 회사를 만들어 제품 종류를 수술용 가위와 칼
등으로 늘렸다.

지난 80년엔 카탈로그를 만들어 본격적인 제품 홍보에 나섰다.

한데 바로 그게 문제가 됐다.

"솔고 (solco) "란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돌리자 병원에선 "솔고가 외제가
아니라 국산제품이었느냐"며 주문을 끊기 시작했다.

외제에만 길들여져온 의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결국 82년 부도를 냈다.

좌절 속에서도 국산 의료용구를 시장에 뿌리내리게 만들겠다는 김 회장의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외제보다 훨씬 좋은 제품을 만들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연구개발(R&D)에만 몰두했다.

"개발해봤자 팔리지도 않을텐데 왜 생고생을 하느냐"는 주변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 86년부터는 5억여원을 들여 몸속에 들어가는 생체용 금속(임플란트)
개발에 착수해 6년만인 92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것으로 척추고정장치를 만들었다.

물론 예상대로 사주는 병원은 없었다.

그 척추고정장치는 5년만에야 빛을 봤다.

외환위기로 수입품의 가격이 폭등하자 병원들이 솔고바이오메디칼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

김 회장은 98년초 20억원을 더 투자해 임플란트의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써보니까 국산도 좋더라"는 입 소문이 돌면서 작년에만 임플란트로
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천덕꾸러기같던 임플란트가 솔고바이오메디칼의 효자상품 노릇을 하고 있는
셈.

지난 93년부터 개발해 만들고 있는 온열전위치료기 등 건강보조기구도 이
회사의 주력품 가운데 하나.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건강보조기구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서
건강보조기구 사업을 키우고 있다.

현재 솔고바이오메디칼의 의료용구와 건강보조기구의 매출 비중은 50대 50
정도다.

"가정용 건강보조기구는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로 시장을 넓히고 수술용
기구 등 의료용구는 고부가가치화해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외제에 밀려 명함도 못내밀던 시절을 생각하면 김 회장은 의료용구를
수출한다는 게 꿈만 같다고 한다.

그 꿈은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 팔릴 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든다"는
김 회장의 외고집 장인정신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0333)664-1900

< 차병석 기자 chab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