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기업의 경영방식을 빠르게 바꿔 나가고 있다.

기업 경쟁의 키워드로 자리잡은 "속도"에 경영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최근 지구촌 경제를 달구고 있는 인수합병(M&A)도 비슷한 맥락에서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출자나 제휴 등도 마찬가지다.

기업 고유의 핵심역량에만 기대려 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일쑤일 만큼
기업환경이 급속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M&A 논리가 단순히 시장지배력 강화였다면 지금은 핵심역량 확대
강화로 정의할 수 있다.

우수한 기술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자신의 기술로 만드는 경영전략의 일환
으로 M&A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처럼 느림보 걸음으로 혼자서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얘기다.

지난 한햇동안 전세계 M&A 규모가 자그마치 2조3천억달러를 웃돌았다는
사실은 최근의 이같은 흐름을 그대로 대변해 준다.

일본의 대형 전자업체들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로 달려가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최근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을 인수하거나 출자하는데
열심이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일본 굴지의 전자업체인 마쓰시타전기 NEC 히타치
등이 바로 이들이다.

마쓰시타전기는 일본업체 가운데서도 일찌감치 실리콘밸리에 진출했다.

지난 97년 10월 벤처기업에 출자할 목적으로 실리콘밸리에 투자회사
"파나소닉 디지털 컨셉트 센터"(PDCC)를 설립했다.

5천만달러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있다.

이미 가전 네트워크 기술을 가진 업체 등을 인수하거나 일정 지분을 출자
했다.

작년 10월부터는 갓 설립된 인터넷 기업에 현지법인 건물내 사무실까지
빌려 주고 있다.

회사 공간을 벤처기업 "인큐베이터"로 만들어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을 발굴하기 위한 목적이다.

현재 이곳에는 6개 업체가 입주해 연구개발을 진행중이다.

NEC는 지난 98년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에 출자할 기금을 모집, 13개 업체에
6천만달러를 출자했다.

작년 9월에는 1억달러의 기금을 추가로 설정했다.

그리고 현지 전문가 3명에게 NEC 사내 문화에 얽매이지 않는 재미있는
발상과 기술을 가진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을 발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기술이나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라면 마다
하지 않고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히타치는 지난해 중장기 경영계획을 발표하면서 3년내에 3천억엔을 정보
시스템 관련기업 인수 및 출자하는데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후지쓰는 일본 아시아 미국 등지의 인터넷 관련기업에 출자할 목적으로
작년 10월 미국의 벤처캐피털과 협력해 투자기금을 설립했다.

일본 전자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기존의 경영방식에서 탈피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경쟁사보다 빨리 기술과 인재를 손에 넣기 위해 기업인수나 출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 전자업체들은 사내 기술진을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상품을
개발해 왔다.

AV기기에서부터 컴퓨터 등의 기기개발에 이르기까지 사내에 연구소를
설치해 기초연구를 추진하고 각 사업부의 기술자들이 신상품을 만들어 왔다.

제품개발에서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회사 스스로가 해결해온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의 기술개발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따라
가는데도 적잖이 어려운 환경이 됐다.

공룡처럼 커진 덩치로는 자유로운 발상이 중요한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부문
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본질적인 한계마저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인수나 출자를 통해 기술을 흡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수하거나 투자한 벤처기업이 일본 전자업체의 실적에 과연 얼마나
크게 기여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찍부터 벤처투자를 시작한 NEC조차 "벤처기업의 감각은 너무나 빨라 최근
에서야 그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벤처투자가 앞선 기술을 소화하는 경영수단으로 자리를 잡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박영태 기자 pyt@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