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하문 밖 세검정 네거리부근에 "석파랑"이란 궁중음식전문점이 있다.

전통 한옥과 널찍한 정원이 업종과 잘 어울리는 집이다.

이 집 울 안에는 인근 대원군 이하응의 별장 석파정에 딸려있던 사랑채가
58년 옮겨지어져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돼 있는 이 사랑채의 이름이 "석파랑"이다.

음식점 간판에는 정부가 인정한 모범전통음식점 표시인 태극마크와 함께
관모를 쓴 대원군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중국.일본인 관광객이 북적대는 석파랑앞을 지날때마다 미국 중국 일본을
그렇게도 싫어했던 대원군이었지만 사후 국제화의 물결에는 어쩔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쓴 웃음을 짓게 된다.

한국현대사를 아는 문화재 행정관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문화재를 다른
곳으로 옮기든지 최소한 대원군의 얼굴이 관광 음식점 로고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하기야 외국관광객들에게 우리 문화재와 전통음식문화를 동시에 알리는 것은
물론 돈도 버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는 요즘 같아서는 탓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 문화재를 장삿속으로만 이용하는 것처럼
위험한 발상도 없다.

서울 신촌에 지난해 문을 연 히틀러시대의 "나치풍 술집"이 외국에까지
알려져 정부가 유대인인권단체의 항의를 받는등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최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극우
신나치세력 발호 움직임과 맞물려 날카로워진 유대인들의 신경을 자극한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젊은세대의 미의 기준은 예술의 미가 아니라 상품의 미다.

그 미라는 것도 알맹이는 빠진 겉모습일 뿐이다.

그들이 상상하는 새로운 미의 창조라는 것도 복사 재복사 혼성모방(퓨전)
재조립단계에 그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가상적인 쾌락과 행복이 뒤덮고 있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술집 "제3제국"은 그런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광고였을 뿐이다.

그러나 주체적 가치판단없이 타국의 잘못된 과거 역사를 장삿속만으로
재현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