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근 < 서울대 교수 / 전기공학 >

전력산업에 대해 얘기해보자.

전기가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대다수는 전력산업 움직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정부가 추진중인 개혁입법의 하나인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해 정기국회에 제출됐다.

이를 계기로 국회 학계 노동계 등에서 찬반논쟁이 뜨겁게 일었다.

마침내는 올 4월 총선과 맞물려 국회에선 심의조차 못하고 있다.

개혁입법이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표류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효율성 제고이다.

한전을 분할해 경쟁체제로 변화시키느냐, 아니면 현재의 독점체제를
지속하면서 공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느냐에 있다.

1961년 3개사 통합당시 한전의 발전설비용량은 36만kW에 불과했다.

98년말께는 그때보다 무려 1백18배인 4천2백36만kW로 증가했다.

직원수도 7천명에서 3만명 수준으로 늘었다.

한전은 과거 경제개발기간에 전력을 안정적이고 차질없이 공급,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성장이면에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

정부의 과다한 규제와 통제, 관료적인 경영,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 결여
등 경영의 비효율성이 그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뭘까.

상당수 전문가들은 시장원리에 따른 경쟁구도로 산업구조 자체를 개편시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이론에서 가장 보편적인 원리가 있다면 "경쟁시장이 독점시장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통신시장이다.

개방의 결과 사업자별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요금도 하락했다.

통신산업의 체질이 강화돼 경쟁의 효과가 소비자에게 귀결되고 있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력산업도 정보를 제공하는 통신산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현재 정부가 검토중인 방안은 한전의 발전부문을 분할해 6개의 자회사로
나누고, 이들간 경쟁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이런 전력산업 구조개편 계획은 경쟁을 통한 원가절감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개선도 멀지않아 가시화될 것이다.

전력공급자가 여럿이라면 수요자(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지 않겠는가.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은 이제 선진국, 개도국 가릴 것 없이 진행되는
전세계적인 조류다.

또 전력시장에서의 경쟁도입은 21세기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이미 유럽 북미 남미 호주 아시아의 대부분 나라가 경쟁체제를 도입했거나
현재 구조개편이 진행 중이다.

가장 보수적인 국가군으로 분류되던 이탈리아와 말레이시아도 올해
구조개편을 착수했다.

가히 범세계적 흐름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외국을 무조건 따라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산업 보호나 기득권 유지를 목적으로 개혁자체를 외면하고
가로막는다면 글로벌 시대를 거슬러 가는 실수를 범한다.

나아가 국가발전에도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된다.

영국의 배전전압 2백20V 승압은 우리가 경험한 아주 좋은 혁신의 예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이 전세계에 전력구조개편 기술을 수출하고 있듯이 우리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보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추진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기술축적을 도리어 이들 국가에 역으로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반대하는 논리중의 하나는 민영화를 추진하면 국부가
유출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글로벌 시대의 세계조류를 잘못 이해한 발상이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이 계속되는 개방화 시대에 국가간 자본이동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외국자본 유치는 이자와 상환부담이 없는 안정적인 외자 확보수단이다.

생산과 고용을 늘리고 첨단기술과 선진경영기법을 이전시켜 기업경영 효율을
제고시키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국내기업도 외국기업에 해외투자를 하고 있고, 한전도 필리핀 등
해외에서 발전사업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우려의 목소리는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약수 발견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은 전 세계가 같이 맞고 있는 시대적
조류이다.

이제 선택 여부를 논할 시점은 지났다.

5년여를 끌어온 한전의 구조개편 논의를 이번 기회에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면 기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이제 구조개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시대적 당위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 parkjk@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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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전기공학과
<>일본 도쿄대 공학박사
<>저서:인공지능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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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