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세대학교 근처에 있는 한 PC방.

수십대의 컴퓨터가 내뿜는 후끈한 열기와 시끄러운 기계음을 헤치고 안쪽
으로 들어가다보면 조그만 사무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스무살 안팎의 청년 네명이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마우스와 키보드에 얹어진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뭘 하길래 누가 들어와도 모르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드는 것도 잠시.

우주선이 날아가는 소리와 낮은 폭발음 소리에 금방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다.

"강의실에 있어야 할 시간에 게임이나 하고 있다니..."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이들은 노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정체는 프로게이머.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이들의 직업이다.

프로게이머는 불과 한두 해 전만 해도 낯선 직업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유망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나 프로농구 선수처럼 프로게이머도 인기 직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큰 상금을 내건 수많은 게임 대회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프로게이머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프로게이머들이 모여 팀을 이룬 프로게이머 팀도 수십개나 생겼다.

수많은 프로게이머팀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팀은 청오정보통신의 "sG"팀.

한 통신업체 광고에 출연해 유명해진 이기석(20)씨가 "sG"팀 소속이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실력만은 이기석씨 못지않은 김창선
(25), 문상헌(19), 박현준(21)씨가 팀을 든든히 받치고 있다.

선수 하나하나의 경력도 화려하다.

모두 굵직굵직한 대회를 휩쓴 경험을 갖고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마냥 게임을 즐기는 것 같지만 "sG"팀 선수들도 엄연한
직장인이다.

이들은 청오정보통신에서 마련해 준 사무실에 매일 출근해 연습을 한다.

출근시간은 보통 오후 1시, 퇴근시간은 오후 8시로 정해져 있다.

그렇지만 꼬박 밤을 새워 게임을 하는 경우도 많아 출퇴근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근무시간에 해당하는 연습시간은 하루 평균 6시간 정도.

며칠을 꼬박 게임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많다.

프로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연봉.

"sG"팀 선수들의 연봉은 웬만한 대졸자 초임보다 많다.

선수들의 나이가 20세 전후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액수다.

보통 회사에 소속된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은 1천2백만~3천만원까지 다양하다.

프로게이머가 돼 좋은 것이 뭐냐는 물음에 "sG"팀 선수들은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맘껏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어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프로가 되면서 나쁜 것도 있다.

"전엔 재미로 게임을 했는데 이젠 일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지겨운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런저런 행사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렇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 자신들이 갈고 닦은 스타크래프트 전략을 모은
책 "프로게이머를 꿈꾸며"를 낼 정도로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많은 프로게이머들의 고민은 "프로게이머의 미래"다.

"sG"팀 선수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아직은 나이가 어려 몇 년 후를 내다보는 건 쉽지 않지만 게임 산업이
발전하면서 관련 직업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게이머는 물론 게임 해설자, 게임 기획자, 게임 저술가 등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앞으로 뭘 할거냐고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죠. 프로는 기록으로
평가받으니까요"

어리지만 당당한 프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김경근 기자 choic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7일자 ).